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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Worship broadcastof Bundong church

등록일 : 2020.02.14   조회수 : 2,533   설교본문 : (시편 118 : 21 – 29)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큰 전력 회사에서 근무하던 케이시는 뛰어난 실력으로 승승장구해 7개월 만에 고액 연봉자 반열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승진 속도가 빠른 만큼 가족과 신앙에서 멀어지는 속도도 빨랐습니다. 아내는 남편 케이시와 한 달에 사흘밖에 저녁 식사를 같이 하지 못하는 생활에 진저리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의 빈자리가 커지는 만큼 더 넓은 집으로 이사하고 방마다 최고급 가구로 가득 찼습니다. 하지만 아내가 정말 원하는 삶은 이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내는 남편 케이시를 떠날 생각을 한 지 오래였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마침내 케이시의 삶을 조정해 주셨습니다. 회사의 구조 조정으로 그가 하루아침에 해고된 것입니다. 그는 절망 속에서 예전에 자신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성공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던 사실을 떠올렸습니다. 문득 이런 깨달음이 왔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원하신 것은 고속 승진과 두둑한 보너스가 아니라 가정과 교회를 소중히 여기며 섬기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하나님은 이 고난의 기간을 통해 케이시의 우선순위를 바로잡으시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되찾게 하셨습니다. 지금 그는 아내와 자녀와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고 한 교회의 선교 부서를 총괄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 있습니다. 진정으로 아름답고 풍성한 삶을 원한다면 먼저 당신 삶에서 쓰레기를 치워야 합니다. 욕심과 우상을 버린 자리에 하나님 은혜가 풍성히 채워집니다(갈5:24).  


  직장이나 돈이나 승진이나 화려한 가구나 큰 집이 하나님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 중에도 하나님을 도구로 하여 세상적인 것을 추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거스틴은 사용할 것을 경배하며 경배해야할 것을 사용하는 것이 우상이라고 하였습니다. 돈은 사용하는 것인데 현대인들이 돈을 경배하고 있고 하나님은 경배해야 되는데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상은 생명이 없어서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줄 수 없으나 모든 것을 빼앗아 갑니다. 우상을 경배함으로 평안과 구원과 영생과 천국과 모든 축복을 송두리째 빼앗아 갑니다. 현대적인 850가지의 바알과 아세라(왕상18:19) 우상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오직 유일하신 여호와만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본문 28-29절에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리이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만이 우리의 하나님이심을 감사하고 높이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다른 신과는 달리 선하시며 인자하심이 영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만을 하나님으로 평생 섬기고 경배하고 충성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1. 모퉁이의 머릿돌이십니다

  본문 22절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모퉁이의 머릿돌”은 건물의 가장 중요한 돌로서 이 돌을 중심하여 벽이 쌓이고 또 이 돌에 건축자의 이름을 새겼습니다. 유대인들에게 버린바 된 예수 그리스도가 이방인들에게는 모퉁이의 머릿돌이 된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메시야를 버리고 이방인들이 메시야를 머릿돌로 받아들인 것이 하나님께서 행하신바 기이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로부터 멸시와 천대를 받던 사람이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 영예롭게 되었으며 더 나아가 중대한 임무를 맡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본래 자격이 없는데 자격을 주시고 가치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방인인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와 축복입니다. 세상이 버렸으나 하나님이 우리를 받아 주시고 사랑해 주시고 하나님의 일꾼으로 사용해 주시고 천국 백성으로 만들어 주신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 모두가 모퉁이의 머릿돌이 된 것입니다. 


  대부분의 부모가 자식에게 원하는 것은 ‘출세해서 너 잘 먹고 잘 살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태어났을 때 아버지는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 초대 왕의 이름인 사울로 지어 주었습니다. 자신의 아들이 사울왕처럼 출세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만약 사울이 자기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살았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바울은 이 세상에 결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바울이 바울일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의 염원이 담긴 사울을 버리고 작고작은 사람이 되어 일평생 복음을 전하며 주님을 섬기는 삶으로 일관했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 역시 자기 정체성에 대해 일말의 흔들림도 없었습니다. 그가 주님 앞에 온전히 엎드렸기에 주님은 그를 통해 역사하실 수 있었습니다. 부르신 분의 뜻을 따라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의무인지 세례 요한과 바울이 확인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고 부활하셨습니다. 끝까지 메시야로서 사명을 감당하셨습니다. 유대인들에게 버려졌지만 이방인의 모퉁이 머릿돌이 되셨고 모든 민족의 구원의 머릿돌이 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살면 됩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여호와만이 하나님이심을 믿고 찬양해야 합니다. 다니엘처럼 사자 굴에서도 하나님만 섬기고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처럼 칠 배나 뜨거운 풀무 불에 던져진다 해도 하나님만 섬기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모퉁이 머릿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며 험한 세상에서 모퉁이 머릿돌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2. 구원과 형통을 주십니다

  본문 25절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우리가 구하옵나니 이제 형통하게 하소서”


  ““여호와여 이제 구원하소서”는 호산나입니다. 같은 말을 중첩시켜 하나님의 구원을 간구하는 것입니다. 미래 사건에 대한 호소입니다. 과거에 이스라엘 군대를 승리로 인도하신 주께서 앞으로도 하나님의 능력을 자기들에게 보여 달라는 것입니다. “형통하게 하소서”는 번영하고 성공으로 이끌어 달라는 뜻입니다. 메시야는 참혹한 십자가의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 사망을 정복하셨습니다. 그리고 승천 하셔서 우리를 하늘나라로 인도하실 준비를 구비하셨습니다. 메시야는 지상과 하늘을 가로막는 거대한 죄의 문을 십자가로 활짝 여셨습니다. 메시야는 십자가의 고난을 통하여 사망을 이기시고 굴복시켰습니다. 메시야는 시공간을 초월하여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좌정하시고 천상천하의 모든 권세와 능력을 위임받으셨습니다. 높임 받은 구속자 메시야를 향해 호산나 찬송을 외치며 영접하고 따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예루살렘에 공공연히 입성하실 때 백성들은 종려 나뭇가지를 흔들고 겉옷을 깔며 공개적인 지지를 표명했습니다(마21:9). 이처럼 여호와의 백성들은 메시야를 통해서 주시는 축복을 확신하고 감사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고 형통하게 해 달라고 간절히 부르짖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구원과 형통은 하나님이 주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진 전시회에 똑같은 사진이 나란히 전시가 되어 있었는데 그 사진을 본 어떤 사람이 작가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어떻게 똑같은 사진이 나란히 걸려있습니까?" 그랬더니 작가는  "똑같은 사진이 아닙니다. 이쪽에 있는 사진은 아침노을을 찍은 사진이고 저쪽에 있는 사진은 저녁노을을 찍은 사진입니다." 그런 대답을 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구별 할 수 있습니까?" 그랬더니 작가는 다시 이런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일출을 찍은 사진은 동해에서 찍은 사진이고 일몰의 사진을 찍은 것은 서해에서 찍었습니다."라고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겉으로 볼 때는 똑같은 사진인 것 같은데 어떻게 보면 전혀 반대가 되는 사진입니다. 한쪽 사진은 아침에 해가 떠오르는 장면을 찍었고 또 그 한쪽의 사진은 해가 서쪽하늘을 넘어가는 것을 찍은 것입니다. 그것을 구분하는 방법은 없지만 동해에서 찍었기 때문에 일출의 사진이고 서해에서 찍었기 때문에 일몰의 사진이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그런 경험을 할 수가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성실하게 열심히 그리고 기쁘게 살았고  또 마음을 다 하여서 보람 있게 살아왔는데 지금은 괜히 짜증이 나고 일이 하기 싫어지고 마음속에 불평만 자꾸 가득 찹니다. 똑같이 아침에 일어나서 식사하고 똑같이 직장에서 일하고 똑같은 시간에 잠을 자는 대도 이렇게 다르게 나타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는 과거에는 창조적인 삶의 자리에 서 있었고 지금은 무엇인가 때문에 절망하고 있는 삶의 자리에 서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동해안 일출에 서 있습니까? 아니면 서해안 일몰에 서 있습니까? 창조적인 삶인지 절망적인 삶의 자리인지 점검해 봅시다. 어떤 자리든지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도하고 의지합시다. 자존심과 체면을 다 버리고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나를 형통하게 하소서’라고 부르짖읍시다. “호산나”라고 외치면 반드시 구원하시고 형통하게 해 주십니다.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고 전파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3. 변함없이 충성합시다

  본문 27절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라 그가 우리에게 빛을 비추셨으니 밧줄로 절기 제물을 제단 뿔에 맬지어다”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들에게 인자하심과 자유와 기쁨을 허락하시고 그들에게 빛을 주심으로 여호와께서는 당신의 하나님이심을 입증하신 것입니다. 여호와의 빛이 비추어져야 깨닫고 은혜를 받게 됩니다. 여호와를 떠난 삶은 어둠입니다. 불행이고 지옥입니다. 경배자의 행렬입니다. 제사장 찬양대의 축복을 받으며 성전 내부에 들어가 제단에 이르러 제단의 뿔에 그들의 제물을 매면서 “여호와는 우리의 강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흑암 중에 있을 때 우리에게 빛을 비취셨으니 이제 우리의 감사의 제물을 여기 묶고 주께 바치나이다”하는 것입니다. 미쉬나(Mishnah)의 기록에 의하면 장막절에 예배자들은 제단 주위에 모여 종려나무 가지나 꽃다발로 제단을 덮었다고 합니다. 축제시에 예배자들이 제단 주위에 모여 종려나무가지나 축제 꽃다발을 제단에 장식하며 때로는 춤을 추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밧줄로 절기 제물을 제단 뿔에 맨다는 것은 제물이 떨어지지 않도록 평생 끊임없이 제물을 드리겠다는 약속과 맹세입니다. 한두 번 상황과 기분에 따라 제물을 드리다가 그만 두는 것이 아니라 평생 한결같이 제물을 드리고 충성하겠다는 하나님과의 약속인 것입니다. 


  많은 성도가 즐겨 부르는 찬송 중에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이 있습니다. 분명 이 찬양을 부를 때는 눈물을 흘리며 자신이 용서 받은 것을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배당 밖으로 나가면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이는 때가 많습니다. 사사건건 정죄하고 판단합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찬양할 때와는 달리 거칠고 사나운 모습입니다. 만약 이처럼 예배 시간에만 은혜를 받고 나머지 시간에는 전혀 거룩하게 살지 못한다면 하나님과의 관계도 막힙니다. 역으로 생각해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관계가 힘든 까닭을 잘 헤아려 보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르지 못해서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런 자신의 모습을 전혀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과대평가합니다. 열심히 교회에 다니니까 내가 그래도 좀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괜찮은 사람인데 늘 주변이 문제다. 저 사람이 문제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십자가에서는 우리의 실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스스로를 괜찮은 사람이라고 합리화하던 시간들이 부끄러워집니다. 아무런 죄 없으신 하나님 아들이 대신 죽으셔야 했을 만큼, 자신이 악독한 죄인임을 알게 됩니다. 우리 모두는 그 십자가에 예수님과 함께 못 박혀서 죄에 대해 죽어야 합니다. 십자가의 담금질을 경험해야 달라집니다. 십자가가 가장 큰 복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과 봉사와 헌신은 평생 계속 되어야 합니다. 무엇이나 누구 때문에 그만 두어서는 안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생 지속되어야 합니다. 사람이나 세상이 아닌 십자가를 평생 바라보아야 합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면 겸손해지고 능력과 소망을 얻습니다. 죽도록 충성해야 합니다(계시록2:10). 시험과 박해와 고난이 많은 세상이지만 “밧줄로 절기 제물을 제단 뿔에 맬지어다”라고 하신 것처럼 제단과 하나가 되어 평생 제단에서 예배하고 기도하고 지키고 드리는 삶이 계속 되기를 바랍니다. 여호와만이 우리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번동가족 여러분!

  세상의 모든 우상을 버리고 여호와만 하나님으로 섬깁시다. 하나님은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셨고 우리에게 구원과 형통의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평생 한결같이 하나님께만 충성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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