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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Worship broadcastof Bundong church

등록일 : 2020.01.31   조회수 : 2,339   설교본문 : (열왕기상 17 : 1 – 7)

인생 그릿 시냇가

  삼성이나 엘지 같은 기업은 반도체로 유명합니다. 반도체 공장에 가면 일하는 사람 모두 작업복을 입고 입김이나 먼지 하나 떨어뜨리지 않게 방진 작업을 합니다. 반도체가 오염되는 가장 큰 요인은 사람 몸에서 떨어지는 각질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몸은 아무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세포가 끝없이 죽어서 각질로 떨어지고 그 자리에 새로운 세포가 자라는 과정을 거칩니다. 사람은 어떤 동물들처럼 탈피하는 것은 아니지만 약 5년이면 몸의 세포가 완전히 새로운 세포로 바뀌는 과정을 거친다고 합니다. 아무런 변화가 없는 몸 같지만 세포들은 계속해서 죽음과 싸우며 변화하고 생명을 보전해 갑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런 변화가 없어 보이지만 정말 변화가 없으면 죽습니다. 그리스도인 중에는 마음의 평안 때문에 신앙을 갖는다는 사람도 많습니다. 편한 신앙생활만 하려하고 대접받는 성도만 되려고 합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은 이 세상 악과 싸우는 거룩한 전쟁입니다. 편안함만 찾고 가만히 눈을 감고 있으면 죽습니다. 깨어 있어 온갖 악과 조의 유혹과 싸우며 계속 변화되고 성숙해져야 합니다. 우리 삶에는 두 가지 길이 있을 뿐입니다. 죄에 굴복해 끌려갈 것입니까? 아니면 거룩한 싸움을 계속하며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체험할 것입니까?


  왕국 분열 후 왕들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이제 북이스라엘은 온통 죄악의 나라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스라엘 전 지역이 우상의 전당투성이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음란함이 전국에 유행하였습니다. 그야말로 이스라엘 최악의 상태라 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란 이름이 이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영영 사라지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북이스라엘의 이러한 상황을 하나님은 결코 방관하시지 않았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일을 시행하셨고 그 일을 위해 이스라엘 역사상 전후무후한 선지자인 엘리야를 부르셨습니다. 본문에는 하나님께 부름받은 엘리야의 첫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엘리야의 가뭄 예언은 가히 돈키호테적이라 할 만합니다. 당시의 상황은 당대의 권력자 아합을 필두로 온 백성이 우상 숭배 도입에 열을 올리던 시기였습니다. 이러한 대세를 거스려 여호와의 이름을 당대의 권력자 앞에서 가뭄 재앙을 선포하는 엘리야의 용기는 당돌하다 못해 무모하기까지 해 보입니다. 아합을 비롯한 권력자들은 엘리야의 선언이란 초라한 촌놈의 ‘계란으로 바위치기’ 쯤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엘리야를 들어 쓰시는 위대한 능력을 보여 주십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살펴보면서 우리 모두 이 시대에 하나님이 쓰시는 엘리야 같은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1. 사명의 그릿 시냇가

  본문 1~2절 “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되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길르앗’은 증거의 돌무더기라는 뜻입니다. 디셉은 엘리야의 고향으로 여섯 번이나 언급되지만 정확한 위치는 알 길이 없습니다. 엘리야는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라는 뜻입니다. 실제로 엘리야는 그 같은 이름의 뜻을 구현하는 데 바쳤습니다. 엘리야는 아합왕(B.C. 874~853) 때부터 아하시야 왕(B.C. 853~892) 때까지 북 왕국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예언 활동을 하였습니다. 엘리야는 아합왕에게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라고 선포하였습니다. 바알과 우상을 숭배하는 아합왕에게 담대한 도전이었습니다. 때를 따라 적절히 내리는 단비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의 결과입니다. 반면에 백성이 우상 숭배에 빠지면 하늘은 더 이상 비를 내리지 않아 생명을 쇠약하게 하며 땅을 메마르게 하리라는 경고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없는 한 가뭄이 가시지 않으리라는 엘리야의 선언은 바알 숭배에 대한 정면 도전입니다. 왜냐하면 바알(Baal)은 땅에 비를 내리는 생산력을 주관하는 풍요의 신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바알은 생명 없는 거짓 신임을 폭로하는 것입니다. 한 시대의 다수를 홀로 상대해야 할 신앙의 용사 엘리야에게는 하나님께서 수시로 말씀을 통해 일거수 일투족을 지시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사명을 주셨을 뿐 아니라 감당할 수 있는 능력까지도 은혜 가운데 주셨음을 뜻합니다. 


  C.S. 루이스는 회심의 순간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내가 너무나 두려웠던 일이 마침내 일어나고야 말았습니다. 1929년 여름 나는 드디어 항복했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인정했으며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아마 그날 밤의 회심은 온 영국을 통틀어 가장 맥 빠진 회심이자 내키지 않는 회심이었을 것입니다. 지금은 너무나도 찬란하고 선명해 보이는 그 일이 당시 내 눈에는 그렇게 비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얼마나 겸손하신지 이런 조건의 회심자조차 받아 주셨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탕자는 그래도 제 발로 집을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끌려가는 와중에도 발길질하고 몸부림을 치고 화를 내면서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도망갈 기회를 찾는 저와 같은 탕자까지도 그분은 받아 주셨습니다. 저 같은 탕자에게도 하늘의 높은 문을 활짝 열어 주시는 그분의 사랑을 누가 찬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양을 찾아 헤매는 목자처럼 탕자를 환대할 준비가 되어 있는 아버지처럼 잃어버린 이를 끊임없이 부르고 계십니다. 우리는 생의 어느 순간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들었을 겁니다. 비록 우리가 알아채지 못했을지라도 말입니다. 그 부르심에 응답했기에 오늘날 우리는 믿음을 갖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디셉 사람 엘리야를 부르셔서 아합왕 앞에 서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대결 하도록 믿음과 용기를 주셨습니다(왕상18:19). 하나님이 부르시고 용기를 주셔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부르신 자에게 능력과 용기를 반드시 주십니다. 오늘 이 어려운 시대에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사명을 주셨습니다. 예배와 섬김과 전도와 구제와 사랑을 위하여 우리 모두를 부르셨습니다. 각자의 사명과 은사와 직분은 다르지만 하나님이 사명을 주셨고 용기와 담력을 주셨습니다. 엘리야를 그릿 시냇가에 머물게 하시고 은혜를 주신 것 같이 오늘 이 시대에 번동제일교회로 부르시고 하나님께서 사명을 주셨음을 믿고 감사함으로 충성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2. 피난의 그릿 시냇가

  본문 3절 “너는 여기서 떠나 동쪽으로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엘리야는 왕궁이 있는 사마리아에 가서 아합왕에게 경고를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사마리아를 떠나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때와 장소가 정확합니다. 그릿은 분리와 단절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내는 어떠한 지역을 구분하는 경계선 구실을 했을 것입니다. 그릿 시냇가는 요단 동편 길르앗의 동굴 지대에 있는 시내 중 하나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숨으라고 하셨습니다. ‘숨고’는 놀라 그대로 피하고 감추라는 뜻입니다. 이 동사에서 엘리야의 심판 선언이 있은 후 아합과 그의 부인 이세벨이 즉각적인 위협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아합의 입장에서 엘리야의 선포는 민심을 교란하는 유언비어이고 반정부적인 불순한 도전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같은 위협만이 피신의 원인은 아닙니다. 아직은 여호와 신봉자와 이방인 숭배자 간의 정면 대결의 시기가 무르익지 않았기에 하나님께서는 당분간 엘리야에게 몸을 숨기도록 명하신 것입니다. 그릿 시냇가는 하나님이 마련하신 최고의 피난처이고 쉼터이고 재충전 할 수 있는 거룩한 장소입니다. 쉼도 하나님의 교육 과정이고 선물입니다. 인간을 깊이 배려하시는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느끼고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오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시편46:1). 그릿 시냇가가 쉼의 장소라기보다는 하나님이 계신 곳과 하나님 자신이 우리의 안전한 쉼과 피난처이십니다. 우리를 결코 떠나지 아니하시고 늘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십니다(사7:14, 마1:23).


  심리학자인 나폴레온 힐(Napoleon Hill)은 현대인은 일곱 가지 불안이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는 가난해질까 봐 불안해하는 경제적 불안이고 그 다음은 명예에 대한 불안이고 그 다음에는 질병과 건강에 대한 불안이 있고 그 다음에는 사랑이 깨지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불안이 있고 그 다음에는 노쇠에 대한 불안이 있고 그 다음에 자유를 잃어버리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불안이고 마지막에 죽을까 하는 죽음에 대한 불안이 있다고 합니다. 경제와 명예와 건강과 사랑과 노쇠와 자유와 죽음까지도 모두가 소중한 것입니다. 무엇인가 잃으면 힘들고 불안해집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도 일곱 가지를 언제까지 다 간직하고 소유할 수는 없습니다. 모든 것을 가지시고 지키시는 하나님께 맡기고 모든 것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면 됩니다. 불안이 아니라 평안을 주십니다. 우리를 지켜 주시고 피할 길을 주시고(고전10:13), 능히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으면 됩니다(롬8:35-39). 우리의 영원한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안전과 쉼과 회복이 있는 그릿 시냇가로 인도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3. 공급의 그릿 시냇가

  본문 4~7절 “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 그가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하여 곧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머물매 까마귀들이 아침에도 떡과 고기를, 저녁에도 떡과 고기를 가져왔고 그가 시냇물을 마셨으나 땅에 비가 내리지 아니하므로 얼마 후에 그 시내가 마르니라”


  엘리야가 예언 선포 후에 이처럼 잠적해 버린 사실을 놓고 그 당시 조롱하고 비웃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피신을 수치로 여기지 아니하고 즉각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있습니다. 엘리야는 사람의 취향과 기질에 연합하여 영웅이 되기보다 자신을 잊은 듯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하고 있는 것입니다. 까마귀들이 아침과 저녁으로 떡과 고기를 가져왔습니다. 까마귀를 의심하는 아합의 군사들은 없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까마귀는 본래 매우 게걸스런 날짐승으로 시체와 썩은 것들을 즐겨 먹어치웁니다. 여호와 신앙의 열의가 대단한 엘리야의 눈에는 당시 우상 숭배에 열중하는 백성의 모습이 마치 부패한 시체를 탐하는 까마귀 떼처럼 가망 없어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까마귀조차도 순종하는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도 여호와의 강권적인 은총으로 말미암아 변화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아합의 경계가 심한 가운데 하나님은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까마귀를 통하여 떡과 고기를 아침과 저녁으로 매일매일 일용할 양식을 안전하고 풍성하게 하나님의 방법으로 공급하여 주셨습니다.


  허드슨 테일러는 희생과 겸손으로 중국 오지 선교의 문을 연 사람입니다. 그의 전기를 읽으면서 그가 위대한 선교사일 뿐 아니라 십자가를 깊이 체험한 사람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도 처음부터 완성된 하나의 일꾼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깊이 체험하기 전부터 많은 사람에게 존경을 받는 성공한 사역자였습니다. 그러나 남들에게 말하기 힘든 은밀한 고뇌가 그에게도 있었습니다. 그는 날마다 심한 영적 빈곤과 고통 속에서 자신의 죄와 투쟁하고 번민하기를 계속했습니다. 주님을 본받으려고 끊임없이 노력했지만 항상 원점으로 되돌아올 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친구 메카시의 서신을 통해 십자가의 진리에 눈을 뜨고 분수령적 회개를 경험합니다.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이 의식할 정도로 극적인 변화였습니다. 당시 그를 지켜본 한 사람은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진정 밝고 행복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오랜 시간 그는 영혼의 안식을 경험하지 못하고 힘들어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예수님 안에서 참 안식을 얻었습니다. 예수님이 그의 모든 것을 변화시키셨습니다. 이제는 그가 설교할 때마다 그에게서 생명수가 흘러나와 사람들의 마음을 적십니다.” 구원과 참 생명의 근원은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위대한 사람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지 않으면 의롭게 설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깊이 만나 새롭게 태어난 사람에게 부활의 기쁨과 능력이 넘칠 것입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떡과 고기를 아침과 저녁으로 까마귀들을 통하여 공급해 주셨듯이 우리에게도 물질과 건강과 믿음과 기쁨과 행복을 공급해 주십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것은 선하고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삶과 언어와 얼굴과 인생관과 대인관계가 달라집니다. 하나님의 공급은 언제나 풍성하고 다양하고 유익한 것들입니다. 앞으로도 까마귀들을 통하여 그릿 시냇가에 있는 여러분들에게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사랑하는 번동가족 여러분!

  우리의 인생이 때로는 가물고 아합 같은 원수가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하시고 사랑하십니다. 우리를 그릿 시냇가로 인도하십니다. 우리 모두는 사명과 피난처와 공급자 되시는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순종하고 충성하는 이 시대의 엘리야가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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