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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Worship broadcastof Bundong church

등록일 : 2020.01.23   조회수 : 2,095   설교본문 : (마태복음 5 : 13 – 16)

세상을 빛나게 하는 교회

  작은 회사를 설립해 각고의 노력 끝에 대기업으로 키워 낸 어느 회장의 이야기입니다. 이 기업의 마지막 입사 면접은 회장이 직접 인터뷰했습니다. 그 면접에서 당락을 결정짓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당신이 이 회사에 들어올 정도로 탁월한 재능을 소유하게 된 것이 운이 좋아서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피나는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하는가?” 엄청난 노력 때문이라고 대답한 구직자는 회장이 전부 탈락시켰습니다. 반대로 운이 좋아서라고 대답한 사람은 전부 합격시켰습니다. 그 이유를 묻는 기자들에게 회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운이 좋아서라고 말한 구직자에게는 내 힘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도움 덕분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마음, 즉 다른 사람에 대한 감사가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은 나중에 회사에서 문제가 생겨도 긍정적으로 문제를 극복해 나갑니다. 그러나 자기 노력 덕분이라 답한 사람은 자신이 정당한 대우를 못 받는다고 생각하면 회사에 불만을 품기에 장기적으로 도움이 안 됩니다.” 이러한 요소는 신앙인의 관점으로 보면 ‘은혜’입니다. 자격 없는 자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성도는 그리스도를 통해 주신 하나님 은혜를 매 순간 기억해야 합니다. 그 은혜 안에 있는 사람이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입니다. 성공하려고 하고 빛나는 찬란한 삶을 위하여 노력하고 때로는 남을 희생시키고 불법을 해서라도 목적을 달성하려고 합니다. 반드시 한계가 있고 수많은 적들이 생기게 됩니다.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혼자 이룰 수 없습니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의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잠언 27:17)라고 하였습니다. 누군가를 빛나게 하는 존재가 위대한 존재입니다. 남과 교회와 세상을 빛나게 하는 성도와 교회가 된다면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하겠습니까? 나 때문에 행복하고 웃고 살고 예수 믿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생긴다면 놀라운 일이고 하나님이 크게 기뻐하실 일입니다. 이런 기적이 많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래야 성도가 살고 교회가 부흥됩니다. 나만 살려고 하고 빛나려고 하면 모두가 죽고 어둠과 혼돈 속에 빠지게 됩니다. 이것이 오늘의 모습입니다. ‘나만’과 ‘내가’가 다른 사람을 위하여 하나님이 하신다고 바뀌어야 모두가 살 수 있습니다. 새해에 세상을 빛나게 하는 성도와 교회가 되기를 축원 드립니다.


1. 빛된 삶을 삽시다
  본문 14~15절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창세기 1:1~3절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라고 하였습니다. 빛이 있기 전에 세상은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 가득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가장 먼저 빛을 창조하셨습니다. 빛이 없는 모든 곳은 어둠입니다. 우리 마음과 가정과 교회와 모든 장소도 빛이 없으면 어둠입니다. 무엇도 분별할 수 없고 어떤 활동도 할 수 없습니다. 빛은 보편적입니다. 누구에게나 평등합니다. 어느 지역이나 민족이나 사람에게나 균등합니다. 인간은 빛이 없이는 한순간도 살 수 없습니다. 절대적인 존재입니다. 빛은 생명을 살리고 성장하게 하고 자유케 합니다. 그러면서도 조용하고 밝고 어떤 대가도 요구하지 아니합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라고 하셨습니다. 어둠이나 혼돈이나 흑암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최고의 찬사를 보내셨습니다. 우리를 귀하고 소중하게 보시는 것입니다. 하찮은 쓰레기와 같은 필요 없는 존재가 아닌 빛과 같은 꼭 필요하고 소중한 최고의 존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어떤 가수가 TV에 나와서 말했습니다. “연일 계속되는 빡빡한 스케줄로 몸이 녹초가 될 때는 가수 생활을 그만두고 싶다가도 무대에서 팬들의 박수갈채를 받으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힘이 솟곤 해요.” 오로지 자기를 행해 쏟아지는 대중의 환호성이 엄청난 에너지를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만족감도 잠깐이라고 합니다. 관객이 모두 떠난 뒤 텅 빈 객석을 마주할 때마다 공허한 마음에 울고 싶어진다고 합니다. 수많은 사람의 열광적인 성원과 추종도 마음속 깊은 곳 빈자리를 메우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닌 만족은 이렇듯 더 큰 공허함을 만들어 냅니다. 인간은 그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또 다른 종류의 인정을 찾아 헤맵니다. 하나님은 그런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공허감과 목마름조차 하나님의 부르심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징계를 통해 우리 안의 자기 자랑과 중독과 교만의 죄를 흩으십니다. 하나님의 그 손길 앞에 겸손히 낮아지지 않을 사람은 없습니다. 그분을 만나면 자신의 실체를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분의 사랑을 받기에 송구할 정도로 너무나 망가진 존재임을 보게 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로 인해 사랑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도 십자가 사랑으로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받아들이십시오. 그 사랑 안에서 모든 아픔을 치유받고 영원한 만족을 얻게 될 것입니다.


  새해에 모든 성도들의 마음과 언어와 삶이 빛으로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어둠과 흑암과 혼돈은 깨끗이 그리고 멀리 물러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소원과 마음만으로는 쉽지 않습니다. 어둠의 배후에는 반드시 사탄이 조절하고 있습니다. 성령 충만한 삶을 살 때 어둠의 세력은 한순간에 물러갑니다. 날마다 기도하고 말씀을 가까이하고 하나님 중심과 교회 중심으로 살아가면 어둠과 흑암과 혼돈의 영들은 말끔하게 사라질 것입니다. 빛으로 충만한 같은 마음과 가정과 인생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2. 착하게 삽시다
  본문 16절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기독교는 죄악된 세상과 결별하고 영원한 천국에만 몰두하는 은둔 생활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세상과 소통하며 세상과 함께 세상을 살리는 것입니다. 본질적으로는 성도들이 이 세상에 궁극적 소망을 두지 않고 영원한 천국을 대망하며 살아야 함은 진리입니다. 이 세상을 나그네와 행인의 심정으로 살아가야 죄악된 현실 논리에 연연해 하지 않고 신앙의 정도를 더욱 과감히 걸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교회뿐만 아니라 정치와 경제와 문화와 각 공동체가 하나님 보시기에 더욱 아름다워질 수 있도록 책임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상에 존재하되 세속에 물들지 않고 오히려 세상을 하나님 중심으로 변화시켜 나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좁고도 험한 땅에 떨어져 죽는 한 알의 밀알 정신으로(요12:24) 살아 백 배의 결실을 맺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소금과 빛의 비유를 더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과 성도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 주어야 하는 것은 착한 행실입니다. 예배나 전도나 기도하는 모습이 아닌 착한 행실을 보여 주어야 세상 사람들이 감동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됩니다. 세상은 듣고 싶은 것이 아니라 착한 행실을 보고 싶어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빛을 보도록 해야 합니다. 악을 행하거나 이기적으로 살면 세상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없습니다. 선을 행하고 베풀고 섬길 때 그들이 마음의 문을 열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됩니다. 지역 사회에 선을 행하고 구제하는 일은 당장의 열매가 없어도 주님 오시는 날까지 계속해야 합니다.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때가 되면 반드시 열매를 맺게 됩니다(갈6:9-10). 먼저 믿음의 가정들에게 착한 일을 하고 점점 지역 사회로 확산해야 합니다.


  스코틀랜드의 로버트 맥체인 목사는 1843년에 29세라는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일화는 주일의 참된 의미에 대한 귀중한 교훈이 됩니다. 이스라엘 선교에 깊은 관심이 있었던 그는 헌신자들과 함께 선교 여행 중 사막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때 일행은 물이 없어서 많은 고통을 겪었습니다. 이집트의 발틴에서의 일이었습니다. 그날은 마침 주일이었습니다. 맥체인 목사 일행이 여정을 잠시 멈추고 예배를 드리려고 하자 그들을 안내하던 아랍인이 강하게 반대했습니다. 그는 날이 용광로처럼 뜨겁고 먹을 양식도 충분하지 않으니 멈추지 말고 여정을 진행해 빨리 끝내자고 고집했습니다. 그러자 맥체인 목사는 단호한 태도로 말했습니다. “주일의 안식은 광야에서도 우리 영혼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다. 오늘 이 광야에 하나님께 영광 돌릴 사람이 없다면 우리라도 이 적막한 땅을 찬양으로 가득 채워야 합니다. 이 귀한 주일에 좋으신 하나님을 즐거워할 나의 특권을 빼앗지 말라.”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분께 영광 돌리며 예배하는 것이 영혼을 위한 가장 중요한 안식이라는 믿음과 참된 안식에 대한 갈망이 그로 하여금 이렇게 단호한 태도로 주일을 지키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거룩한 주일 성수는 불꽃처럼 드리는 예배로만 가능함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 예배할 때 능력과 힘을 공급받습니다. “여호와와 그의 능력을 구할지어다 그의 얼굴을 항상 구할지어다”(시105:4)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를 구하는 자들은 마음이 즐겁다고 하였습니다(시105:3). 하나님께 기도할 때 능력과 즐거움이 충만해져서 이웃을 생각하고 사랑하고 착한 일을 하게 됩니다. 양심과 도덕적 차원을 넘어서 믿음의 차원으로 착한 행실을 하여 사람을 구원하고 교회를 비추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3.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시다
  본문 16절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6:19-20).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 우리의 몸과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해야 합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우리의 삶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잘 먹고 잘살고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목적 지향적인 삶을 살아야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축복하시고 높이 오르게 하십니다. 착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목적이고 착한 행실은 도구와 과정입니다. 빛은 죄로 어두운 세상을 비추는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상태입니다. 성도들이 세상에서 물러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기회를 상실하게 하면 안 됩니다. 본 훼퍼(Bonhoeffer)는 보이지 않는 곳으로 도피하는 것은 부르심의 거부이며 보이지 않게 숨으려는 예수님의 공동체는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적극적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열심히 그리고 능동적으로 세상을 살아야 합니다. 강하고 담대해야 합니다. 날마다 그리고 끝까지 충성해야 합니다.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잠언24:16).


  인간의 노력과 방법은 언제나 함정이 있습니다. 잠깐은 순풍에 돛을 달고 잘 달리는 것 같지만 얼마 가지 않아서 돌풍을 만나 고통당할 때가 있습니다. 인생의 돌풍 앞에서 우리들이 안식과 평화를 누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우리의 소망이 되시고 기쁨이 되시고 축복의 근원이 되시는 예수님을 내 삶의 중심에 모시는 것입니다. 내 야망을 좇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어렵고 힘들수록 땅을 보지 마시고 눈을 들어 위를 보시기 바랍니다. 밤하늘의 별을 보시고 그 속으로 다가오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는 부족하고 나는 할 수 없어도 우리 주님 함께 하시면 우리는 넉넉히 감당할 수 있음을 믿습니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 합니다. 위기를 하나님이 들어 쓰시는 축복의 기회로 만들어야 합니다. 산속 옹달샘 가에 가면 물을 떠먹는 쪽박이 있습니다. 그 쪽박은 아무도 부러워하지 않는 평범한 그릇입니다. 만약 그 쪽박이 아름답거나 멋이 있다면 금방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 쪽박은 아무에게도 부러움을 주지 못하는 그릇이기에 거기에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쪽박은 목마른 사람이 옹달샘을 찾았을 때 생수를 떠먹을 수 있는 귀한 그릇이 됩니다. 그 쪽박의 겉모습은 별 것 아니지만 목마른 자들의 갈증을 해결하는 소중한 도구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앞에 쓰임 받은 믿음의 사람들은 산속 옹달샘 가에 있는 쪽박 같은 자들이었습니다. 특별히 예수님의 족보에 올라있는 5명의 여인의 모습을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마태복음 1장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다말, 라합, 룻, 밧세바 그리고 마리아입니다. 다말은 가족의 대를 잇기 위해 시아버지와 관계를 맺은 여인입니다. 라합은 기생출신으로 정탐꾼을 숨겨줌으로 구원받은 여인입니다. 룻은 모압의 여인으로 시어머니 나오미를 좇아 베들레헴에 와서 보아스를 만나 다윗의 증조모가 된 여인입니다. 밧세바는 우리야의 아내로 비록 남편을 잃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다윗의 뒤를 잇는 솔로몬을 태어나게 했습니다. 마리아도 무명의 한 여인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한 축복의 여인이 되었습니다. 그 여인들의 공통점은 무명의 여인들입니다. 불가능을 극복하고 기적을 이룬 여인들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덧입은 여인들입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축복의 통로가 된 여인들입니다. 가장 비천한 육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들어 쓰시면 위대한 일군이 될 수 있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킨 자들은 위대한 사람들이 아니라 위대하신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약한 사람들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이 시대에 쓰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사랑하는 번동가족 여러분!
  어둡고 부패하고 힘든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사는 것도 힘들고 믿음 생활하는 것도 힘듭니다. 그런데 어떻게 세상을 빛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모두 빛 된 삶을 살고 착한 삶을 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성도가 되어 가정과 교회와 세상을 빛내는 빛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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