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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Worship broadcastof Bundong church

등록일 : 2019.04.05   조회수 : 3,283   설교본문 : (호세아6:1-3)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누군가를 알아 가는 데에는 네 가지 단계가 있습니다. 첫째는 정보의 단계로 듣고 아는 것입니다. 상대방에 대해 들어서 알기는 하지만 그저 머리로만 지식적으로만 아는 것입니다. 둘째는 관심의 단계입니다. 상대방이 한 말이나 행위가 자신의 마음에 들어와 작은 파동을 일으킨 상태입니다. 셋째는 깊은 배려의 단계입니다. 이는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단계는 순종의 단계입니다. 순종은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을 넘어 그에게 온전히 속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이는 상대방과 온전히 하나가 되는 단계로 어떤 존재를 안다는 것의 완성입니다. 신앙은 하나님을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알다’라는 단어의 히브리어에는 관계에 대한 히브리인들의 독특한 사고방식이 들어 있습니다. 그들이 어떤 대상을 ‘알다’라고 할 때는 그 대상을 머리로만 아는 것을 넘어 전인격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을 알아 가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을 인정하고 대화하며 그분과 동행하는 것이 그분을 아는 것에서부터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을 지식적으로 아는 것에서 더 나아가 그분과 하나 되어 그분께 온전히 속한 순종의 단계로 나아오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불러내실 때에도 먼저 “나 여호와를 알라. 내 목소리를 들으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말씀을 따르는 것이 하나님 백성의 생명이요 기쁨입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누가복음 15장 11ᜭ32절에는 탕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그것은 죄인이 회개하고서 돌아오기를 간절히 고대하는 하나님의 자비와 오래 기다리심을 잘 나타내 주는 비유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언제든지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만 하면 무조건적으로 용서하시고 사랑해 주십니다. 다만 문제는 인간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느냐 돌아가지 않느냐에 있는 것입니다. 비록 하나님께 중차대한 죄를 범했을지라도 돌아가기만 하면 모든 죄를 다 용서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1절에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라고 합니다. 이는 호세아의 주제이며 선지자들에게 공통되는 주제입니다. 선지자가 포로민에게 계속적으로 권면하는 말이며 또 백성들이 서로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라고 권하는 말로도 풀이됩니다. 오늘 이 시대에 여기에 있는 우리를 향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과 우리들 간에 방향과 거리를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방향으로 하나님 안으로 그리고 품으로 돌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1. 낫게 하시고 싸매 주십니다

  본문 1절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는 그들이 범죄할 때에 찢으셨으나 회개할 때는 곧 낫게 하시고 싸매어 주십니다. 앗수르의 의원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를 낫게 하십니다. 찢다의 히브리어 ‘티라프’는 사자가 먹이를 찢는 것처럼 심판이 가혹함을 암시합니다. 이는 여호와께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치료하고 회복시켜 주시는 여호와의 사랑과 주전적인 섭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여호와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백성들의 참된 회개를 전제하고 있습니다. 몸만 돌아오는 것이 아닌 마음과 인격이 돌아와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은 오직 여호와께 달려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는 오직 여호와만이 이스라엘을 낫게 하시고 싸매어 주십니다. 참된 회개에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고백하는 깨달음이 먼저 요구됩니다. 우리 스스로가 깨닫기에 앞서 여호와께서 먼저 우리에게 계시해 주셔서 회개에 이르게 해 주십니다. 하나님 앞에 범죄 하였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은 최고의 지혜이며 은혜이며 축복입니다. 끝까지 매만 맞다가 끝나는 경우도 많습니다. 애굽의 바로 왕이 하나님께 열 번 이상 매만 맞고 끝난 가장 불쌍하고 비극적인 사람입니다. 제 2의 바로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CCM가수이자 대학 교수인 하덕규 씨는 유명한 대중가요 가수였습니다. 그는 큰 인기를 얻었지만 술과 쾌락에 빠져 인생의 참의미를 모르고 방황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누나에게 거의 끌려가다시피 해서 송구영신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그 예배에서 하나님은 아무 문제없이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에게 찾아 오셔서 그의 죄를 깨닫게 하셨습니다. 하나님 없이는 허무할 수밖에 없는 인생의 참모습을 그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하덕규 씨는 그때 자신이 느낀 것을 바탕으로 ˂가시나무˃라는 곡을 썼습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당신의 쉴 곳 없네/내 속에 헛된 바램들로/당신의 편할 곳 없네∙∙∙.” 자기 모습을 있는 그대로 적어 내려갔기 때문에 그는 이 노래를 10여분 만에 완성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 우리는 모두 ‘내 속에 내가 너무 많다’는 고백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욕심과 욕망이 가득한 나, 쉼을 얻지 못해 지치고 곤고한 나, 날카로운 가시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줘서 그들을 돌아서게 만드는 나, 이런 어둠과 슬픔이 가득하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나∙∙∙. 그러나 하나님은 아무 문제없어 보이려 애쓰는 우리의 겉모습 속에 감춰진 ‘진짜모습’을 보고 싶어 하십니다. 마음 깊은 곳에 꽁꽁 숨은 속사람을 성령의 빛 가운데 드러내십시오. 어린 아이같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십시오. 구원과 회복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오늘날 여호와로부터 돌아서 있고 여호와를 멀리 떠나 있고 여호와와 나 사이에 사람과 물질과 죄와 불의한 것들이 가로막고 있기에 너무나도 아픔과 상처가 많습니다. 웃어도 웃는 것이 아닙니다.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죽을 노릇입니다. 오늘날 모든 사람들의 마음과 가정과 인생 안에는 너무나도 많이 찢어졌고 멍이 들어 있습니다. 부모와 자식, 성도와 목회자, 어른과 아이들의 마음과 삶에 찢어진 상처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세상과 사람은 결코 낫게 하거나 싸맬 수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파라클레토스 되시는 성령님께서만 위로하고 상담하고 치료하고 회복하실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로 더 돌아갑시다. 조금만 더 가까이 갑시다. 그리하여 여호와께서 여러분 모두를 낫게 하시고 싸매어 주시는 치유의 은혜가 임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2. 살리시고 일으켜 주십니다

  본문 2절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이틀과 제삼일은 그리 멀지 않은 날을 의미합니다. 가깝게는 이스라엘 백성을 포로생활에서 구원해 내실 것이고 멀리는 메시야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3일 만에 부활하실 예언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의 정치적 회복뿐만 아니라 영적이고 도덕적인 회복을 엿볼 수 있습니다. 회개하고 돌아오는 이스라엘을 여호와께서 다시 소생시킬 뿐만 아니라 메시야를 통해서 영원한 생명으로 다시 살릴 것임을 약속하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의 주권을 인정하며 그의 섭리와 보호 아래서 살게 되리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생명과 영생은 하나님의 손아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보호와 사랑과 축복을 받으며 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영광 돌리며 살아야 하는 특별한 존재들입니다. 


  “포기하지 않는 개구리가 버터를 만든다.”라는 서양 속담이 있습니다. 개구리 두 마리가 우유 통에 빠졌는데 한 마리는 포기해서 죽고 다른 개구리는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다리를 저어 우유가 버터로 굳어져 살아 나왔다는 우화에서 나온 속담입니다. 희망을 갖는다는 것은 낙관적인 인생관을 갖는 것입니다. 비관적인 문턱을 넘어 복이 들어올 수는 없습니다. 희망을 갖는다는 것은 보다 높은 신조를 갖는 것입니다. 욕심의 철학이 아니라 꿈의 철학을 갖는 것입니다. 희망을 갖는다는 것은 가능성을 믿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나 돌파구를 찾는 것입니다. 희망을 갖는다는 것은 진실의 승리를 믿는 것입니다. 거짓의 일시적인 성공을 보고도 허무해지지 않도록 용기를 갖는 것입니다. 희망을 갖는다는 것은 자신의 사명 위에 확고히 서는 것입니다. 자기의 할 사명을 확실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희망이 없을 수 없습니다. 희망을 갖는다는 것은 보다 큰 것을 보는 것입니다. 큰 목적을 위하여 작은 것을 버릴 수 있는 용기를 갖는 것입니다. 희망을 갖는다는 것은 다시 일어나는 것입니다. 넘어진 것이 잘못이 아니라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것이 잘못입니다. 희망을 갖는다는 것은 날씨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것입니다. 폭풍은 폭풍으로서의 의미가 있습니다. 세상 미련 다 버리고 예수의 방주에 오릅시다. 살 곳은 그곳밖에 없습니다. 소망은 그 곳밖에 없습니다. 38년 동안 절망을 헤매던 사람도 베데스다 못에 가서 예수 방주에 올라 괴로움에서 벗어났습니다. 수치와 죄책감으로 오래 고민하던 수가 성 여인도 우물가에서 예수 방주에 올라 새 날을 내딛었습니다. 희미한 신앙으로 영적 방황을 하던 니고데모도 어느 날 밤 예수 방주에 올라 영생의 빛을 찾았습니다.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헛된 이생의 자랑과 내 발을 칭칭 묶는 욕심을 벗어버리고 재리의 유혹과 안목의 유혹을 툭툭 털어 버리고 예수 방주에 오릅시다. 소망과 생명의 주님 예수는 우리의 방주가 되십니다(벧전3:20이하, 창7:7). 대홍수에서 살아날 수 있는 유일한 곳은 방주였습니다. 진노의 홍수가 침입할 수 없는 유일한 구원성과 유일한 도피성(민35:6)은 방주였습니다. 여호와만이 우리를 죄와 위험과 사망과 지옥에서 영원히 살리시고 일으키십니다. 다른 곳에는 모두가 죽음입니다. 여호와는 언제나 희망이고 영생이십니다. 우리 모두 여호와께로 돌아가서 살리시고 일으키시는 여호와의 은혜를 체험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3. 비와 같이 임하십니다

  본문 3절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여호와께 돌아간 후에 할 일은 여호와를 알기 위해 힘쓰는 것입니다. ‘힘써 알자’는 알기 위해 좇아가자는 것인데 여호와를 알기 위해 최선을 다하여 힘쓰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호와께 돌아가 그를 안 자에게 여호와께서 나타나실 것을 두 가지 아름다운 비유로 표현합니다. 새벽빛과 이른 비와 늦은 비입니다. 새벽빛은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것으로 선민의 구원의 시작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른 비는 12월부터 2월까지 오는 파종의 비로 우량도 많고 농사에 대단히 중요합니다. 늦은 비는 3-4월에 오는 결실의 비입니다. 두 비는 파종과 결실을 위해 절대 필요한 것으로 농사에 없어서 안 되는 것입니다(약5:7). 이와 같이 여호와를 힘써 알면 여호와의 임재가 새벽처럼 틀림없이 나타나고 만물을 소성케 하는 이른 비와 늦은 비처럼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힘써 아는 백성들에게 풍요로운 은총과 축복을 반드시 내리십니다. 여호와의 말씀과 약속은 반드시 그대로 됩니다(사55:11).


  요즘 영국의 교회들이 모스크(이슬람 사원)아니면 술집으로 바뀌어 간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심지어는 위대한 설교가 찰스 스펄전 목사가 시무했던 교회마저 팔려 나갈 위기에 있다고 합니다. 오래전부터 조금씩 진행되어 왔던 예배의 침체가 점점 가속화되어 막바지까지 치달은 결과입니다. 예배를 소중히 하느냐 마느냐는 개인과 공동체뿐 아니라 한 나라의 운명까지 결정합니다. 따라서 위기 중에도 예배를 사수해야 합니다. 다 쓰러진 곳에서도 가장 먼저 회복시킬 것은 예배와 교회입니다. 예배는 교회의 존재 이유입니다. 교회의 가장 중요한 직무는 예배입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통해 우리를 만나 주십니다. 예배를 통해 우리를 살리십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중요한 일이라 해도 예배보다 우선할 것은 없습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예배를 강조합니다. 예배를 드리기 위한 희생이나 투자는 아무리 많아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반면 예배가 무너지면 교회가 무너집니다. 교회가 무너지면 그것은 곧 국가적 수난으로 이어지며 그 수난은 개인에게로 돌아옵니다. 그때부터는 죽음과 같은 삶이 계속됩니다. 이는 성경이 증명하고 역사가 증명하는 진실입니다. 예배가 살면 내가 살고 공동체가 삽니다. 이것이 성경의 수많은 선지자와 지도자가 무엇보다 성전과 예배의 회복을 가장 우선시한 이유입니다.


  예배는 여호와를 만나는 인간 최고의 축복입니다. 여호와께 돌아온 사람은 여호와께 예배를 드립니다. 예배를 드리면 여호와께서 예배자에게 새벽빛과 이른 비와 늦은 비처럼 반드시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모든 우상을 다 버리고 빛과 비를 베풀어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사랑하는 번동가족 여러분!

  지금은 여호와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국가와 교회와 가정과 모든 백성들이 진심으로 회개하고 여호와께로 돌아가야 삽니다. 낫게 하시고 싸매 주시고 살리시고 일으키시고 빛과 비를 주시는 여호와께로 전적으로 돌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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