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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Worship broadcastof Bundong church

등록일 : 2020.04.03   조회수 : 962   설교본문 : (골로새서 1:24-29)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라

  미국 남북 전쟁 당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한 남자가 남과 북 경계선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까닭에 충성심도 둘로 갈라져 남군도 아니며 북군도 아닌 상태에서 무척이나 고심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그에게 아주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렇지 아래는 남부 연합군의 회색 바지를 입고 위에는 북군의 푸른색 상의를 입으면 되겠구나“ 후에 그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치열한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북군은 그가 입은 회색바지를 향하여 총을 쏘았고 남군은 그가 입은 푸른색 상의를 향해 총을 쏘았습니다. 신앙생활은 중간지대에 있으면 안됩니다.


  오늘 본문 24절에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속죄의 고난으로서 완전합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이란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충성하는 성도의 고난입니다. 우리의 고난은 속죄의 고난이 아닌 하나님 나라의 건설을 위한 고난입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으로 죄사함과 구원과 하나님 자녀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해야 합니다. 영광만을 누리는 성도가 아닌 고난에도 동참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롬8:17-18). 오늘은 종려 주일이며 이번 주간은 고난 주간입니다. 오늘 성찬예식을 통하여서 우리 모두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기쁨과 감사함으로 동참하는 성숙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1. 교회를 위한 고난
  본문 24-25절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엡1:23). 교회는 만민이 기도하는 집입니다(사56:7). 사도 바울은 고난을 통해 복음이 선포되고 교회가 세워짐을 기뻐하였습니다. 교회의 일꾼이 받는 고난은 바울처럼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위해 받는 고난입니다. 교회 때문에 받는 고난이라면 어떠한 고난이든 간에 달게 받아야 합니다. 교회를 위한 일이라면 모두가 기쁨으로 앞장서야 합니다.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님은 성도들이 겪는 모든 아픔과 고통을 다 아십니다. 성도들이 겪는 고난을 낱낱이 지켜보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주신 직분은 교회를 위해 충성하고 고난 받으라는 직분입니다. 이익과 영광의 계급이 아닌 희생과 섬김의 직분입니다.


  어떤 사람이 당대의 헤비급 챔피언인 제임스 콜벳에게 어떻게 해서 챔피언이 될 수 있었느냐고 묻자 “한 회만 더 싸우자”라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에디슨에게 도대체 발명에 성공하는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나는 다른 사람들이 그만둔 데서부터 다시 시작하죠”라고 대답했습니다. 나폴레온 힐은 그의 책 “생각하라 그리고 부자가 되라”에서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500명을 조사한 결과는 그들 모두 인내심이 강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처칠이 그의 모교를 방문했을 때에 청중들은 수상으로서 위대한 연설을 해줄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코 포기하지 말자”는 간단한 말만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연설이 그의 가장 훌륭한 말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결코 중도에 그만두지 말라“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서 예배 드리고 봉사하고 충성하는 성도들이 있기에 오늘의 교회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아니면 교회 건물은 팔리고 다른 용도로 쓰여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은 교회를 위한 성도들의 고난입니다. 교회를 위해 충성하고 고난 가운데서도 교회를 끝까지 사랑하고 섬기는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끝까지 동참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2. 복음 전파를 위한 고난
  본문 26-27절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교회와 복음을 분리할 수 없습니다. 복음으로 인하여 교회가 되었고 교회는 복음을 전해야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복음이 없거나 전하지 않는 교회는 더 이상 교회가 아닙니다. 그냥 건물이고 모임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교회가 교회 되고 성도가 성도 되는 것입니다. 사도들과 성도들은 목숨 걸고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순교하기까지 복음을 전하였고 복음 전파 사명을 위해 생명을 조금도 귀하게 여기지 아니하였습니다(행20:24). 교회의 직분을 맡은 모든 일꾼들은 누구나 구원의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복음 전파의 사명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인 복음을 전파할 때 교회의 일꾼이 되는 것이고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행11:26).
 
  옛날에 한 시골 농부가 평생에 벼슬 한 자리 하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그런데 듣자하니 사람들 얘기가 벼슬을 하려면 한양에 가서 한 삼년 굴러야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시골 농부는 그 날로 봇짐을 쌌습니다. 그리고는 한양으로 올라가 가장 큰 거리에 나가 무작정 땅에 떼굴떼굴 구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왜냐면 벼슬하려면 굴러야 된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순진하지요. 그러니까 즉시 구경꾼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여보시오 거 무슨 짓이오 사연이나 들어봅시다“ ”들어보면 어떡헐거요. 나는 자그마치 이렇게 3년 동안 굴러야 되오“ ”허허 3년 동안이나요. 이 보시오 곡절이나 좀 압시다“ 그 농부로부터 곡절을 들은 사람들은 배꼽을 잡고 웃었습니다. 하루 이틀이 가고 벌써 몇 달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임금님이 평복을 입고 민정시찰을 나왔다가 이 소문을 듣고 구경왔습니다. ”이보시오, 그렇게 벼슬이 하고 싶소?“ ”고을에 현감자리는 어떻소?“ ”좋지요“ ”그러면 판서자리는 어떻소?“ ”더 좋지요“ ”판서보다 정승이 어떻소?“ ”좋다 마다요“ ”이보우, 그럼 아예 임금자리가 어떻소?“ 이 말을 듣자 갑자기 벌떡 일어난 농부는 변장한 임금님의 뺨을 찰싹 후려쳤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야, 이놈아, 그러면 나보고 역적질을 하란 말이냐“하면서 죽일 듯이 덤벼들었습니다. 겨우 피해 궁궐로 돌아온 임금님은 그 농부를 대궐로 불렀습니다. 임금님이 말했습니다. ”네가 평생 벼슬 한 자리가 소원이라는 그 농부렸다“ ”황공하옵니다“ ”고개를 들라” 임금님을 본 농부는 깜짝 놀랐습니다. 온 몸이 떨리고 얼굴은 사색이 되었습니다. 아까 시장에서 따귀를 때린 바로 그 사람이 임금님이 아니겠습니까? “임금님,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허허허, 아니다. 내가 너의 충성심에 감동을 하였노라” 그 길로 농부는 벼슬 한 자리를 받아 금의환향하였고 나라에 충성하며 잘 살았습니다. 사람은 감동을 받으면 마음이 움직이게 됩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을 감동시켜 복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을 바쳤고 이삭은 죽음을 피하지 않았으며 야곱은 천사와 씨름할 때 축복을 받기까지 결코 포기하지 않았으며 요셉은 안 주인 여자의 성적 유혹을 주인에 대한 충성과 하나님에 대한 신앙으로 물리쳤으며 다니엘은 자신을 잡기 위한 올무인줄 알면서도 어떤 신에게나 사람에게 기도하지 말라는 다리오 왕의 조서를 정면으로 어기면서 신앙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이 외에도 열거할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감동시켰습니다. 하나님을 감동시킨 자들은 모두가 하나님을 만났고 쓰임 받았으며 복을 받았습니다. 사람을 감동시켜도 이 땅에서 잘 되는데 하물며 하나님이시랴. 이왕이면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사람들이 됩시다.


  우리 모두 복음에 감동되고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복음 전파를 위해서 살고 복음 전파를 위해 죽는 이 시대의 사도 바울이 됩시다. 복음은 죄인을 살리고 구원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성도는 복음을 위해서 살라고 부르심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목숨 걸고 복음을 전함으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동참하는 교회와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3. 성도를 완전한 자로 세우기 위한 고난
  본문 28-29절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권면과 가르침’은 중요합니다. 전도를 받아 그리스도를 믿게 된 것으로 모든 것이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계속해서 가르침을 받아야 완전한 자로 세우심을 받게 됩니다. 바울은 사도로서의 능력의 원천이 자기가 아닌 그리스도에게 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가르침과 봉사는 수동적이거나 의무적이거나 체면적인 것이 아니라 힘을 다하여 수고해야 합니다. 의무 이상을 감당하되 어떤 권리도 요구하지 않는 공동체는 능력과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능력이 진가를 드러내는 것은 바울 자신의 사도적 소명 의식의 철저성과 전적 헌신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바울이 선교와 목회를 수행하면서 괴로움과 고통을 받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여 교회와 복음을 위해 헌신한 것은 그리스도의 능력주심과 사도적 충성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소명과 충성은 계속 같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오스카 와이드가 쓴 단편으로 알려진「그날 이후」는 은혜를 받는 것보다 받은 은혜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잘 이야기해 줍니다. 어느 날 예수님은 자신에게 치유 받은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 그들을 찾아가셨습니다. 그들은 모두 은혜를 받았지만 은혜를 잊어버린 채 살고 있었습니다. 걷지 못하는 장애인이었으나 은혜로 고침 받은 사람은 이제 구걸해 먹고 살 수 없어 인생을 비관하며 술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음행을 용서받은 여인은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옛 생활로 돌아갔습니다. 시각 장애를 치유받은 사람은 눈을 뜬 후 바라본 세상에 실망해 싸움 꾼이 되어있었습니다. 은혜를 받았으나 그 은혜를 지키지 못한 이들의 삶은 전보다 더 비참했습니다. 우리가 전자 제품이나 값 비싼 물건을 살 때 꼼꼼히 따지는 것 중 하나가 AS(애프터서비스)입니다. 사후 관리를 철저히  해 주는지를 확인해야 제품을 믿고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구매자의 실수로 파손되거나 고의로 고장을 낸 것은 무상 AS가 제공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은혜를 소홀히 생각하고 방치해 우리 삶에 문제가 찾아왔다면 하나님은 그 책음을 물으실 것입니다. 은혜는 받는 것보다 소중하게 간직하고 키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은혜 안에 거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더 큰 은혜를 주십니다(요1:16).


  먼저는 나 자신이 바로 서야 합니다. 말씀과 충성이 있어야 합니다. 가족과 모든 성도들이 가르침을 받아야 하고 그들이 완전한 자로 세워질 때까지 섬기고 사랑하고 충성해야 합니다. 도중에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생명을 살리고 세우고 완전하게 하는 사역이 계속 이어져야 합니다. 구역과 교회학교와 각 선교회를 통해서 모두가 그리스도처럼 완전한 자로 거듭나고 성장하고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사람을 완전한 자로 세우는 수고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성도를 온전하게 세우는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사랑하는 번동가족 여러분!
  믿고 행하기가 얼마나 힘드십니까? 교회를 위하고 복음 전파를 위하고 성도를 완전한 자로 세우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고난주간에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는 능력이 충만해 지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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