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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Worship broadcastof Bundong church

등록일 : 2019.05.24   조회수 : 655   설교본문 : (창세기 47 : 1 - 10)

네 나이가 얼마냐

  영국의 신학자 웨스트콧(Westcott) 박사가 기차를 타고 여행하는 중이었습니다. 그때 한 여인이 그와 합석을 하게 되었습니다. 공교롭게도 그 여인은 전도 열정이 뜨거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자리에 앉아마자 “당신은 구원을 받았습니까?”라고 웨스트콧 박사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웨스트콧 박사는 다시 물어봐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여자는 ‘아! 이 사람은 구원이라는 말에 대해서조차 들어보지 못했구나.’라고 생각하고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자 박사는 이렇게 되물었습니다. “당신은 나에게 과거형(I was saved)으로 묻는 것입니까? 현재 진행형(I am being saved), 아니면 미래형(I will be saved)으로 묻는 것입니까?” 처음 예수님을 믿고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구원이 이루어지면 그것으로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그것만이 구원의 전 과정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으로 우리가 죄인의 상태에서 의인의 상태로 변화된 신분적 의미의 구원이 이루어졌다면 그 이후의 삶에서는 수준적 의미의 구원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바로 회개와 순종으로 거룩함을 계속 이루어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공로로 의인의 신분이 되었다 해도 믿음의 싸움을 멈추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믿음이 약해져서 뒤로 물러가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성화를 이룰 때까지 믿음을 지킴으로 완성 차원의 구원에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두 사람이 동일한 일을 하더라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자와 의무와 억지로 하는 자의 삶의 결과는 크게 다르고 하늘과 땅의 차이를 가져옵니다. 마지못해서 억지로 하기 때문에 성과나 열매가 없습니다. 모든 불행은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은 섬기면서 기쁨을 얻고 만족과 행복을 얻게 됩니다. 사랑은 행복의 열매를 맺게 하는 꽃씨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 가운데 이 사랑과 행복이 가득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사랑과 행복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흘러 들어가야 합니다. 천신만고 끝에 가나안을 떠나 애굽에 온 야곱의 모든 가족이 애굽 왕 바로 앞에 요셉의 인도로 서게 됩니다. 야곱이 바로를 축복하였습니다. 이 때 바로가 야곱에게 “네 나이가 얼마냐”라고 물었습니다. 오늘 본문 9절에서 야곱은 백삼십 년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여러분의 나이는 얼마입니까? 지금까지 어떤 인생을 살아왔습니까? 여러분의 인생과 가정과 가족들에게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가 넘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1. 나그네 길입니다

  본문 9절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야곱은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라고 하였습니다. 창세기 중에 나타난 아름다운 문장 중의 하나입니다. 야곱은 그 자신의 생애와 그 조상들의 생애를 ‘나그네 길’이라고 묘사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가나안 땅을 약속받았으나 그 땅을 소유하지 못하고 정처없이 오랫동안 방황하였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표현은 피조물인 인간이 참된 휴식을 누리지 못하며 지상에서 영적 평안을 갈구하며 수고하고 애쓰는 생활에 대한 문학적 표현입니다. 야곱이 우리 조상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사실 아브라함도 이삭도 나그네 길을 갔습니다. 이처럼 모든 인생은 누구도 예외 없이 나그네 길을 갑니다. 누구에게나 단 한 번의 나그네 길이 주어집니다. 다윗은 아들 솔로몬에게 유언할 때에 먼저 다윗이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가게 됨을 언급하였습니다(왕상 2:2). 이것은 그가 나그네 인생길이 누구나 가는 길임을 평생 동안 잘 인식하고 살아왔음을 보여줍니다. 한 번의 나그네 인생길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베푸신 균등한 기회입니다. 이 나그네 길을 잘 가서 기쁨과 감사 속에 생을 마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후회와 고통으로 점철된 생을 산 사람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며 존경을 받는 사람도 있고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행복하고 후히 없고 하나님의 칭찬과 면류관을 받는 나그네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두 아이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길을 걷습니다. 그러던 중 한 아이가 갑자기 걸음을 재촉합니다. 그러자 친구와 속도를 맞추기 위해 다른 아이도 빠르게 걷기 시작합니다. 이제 둘은 서로 경쟁하듯 더 빨리 걷습니다. 이렇게 걸음을 재촉하다 보니 어느새 달리기가 되었습니다. 숨이 턱에 차도록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무작정 뛰다가 앞서가던 아이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집니다. 넘어진 아이 위로 친구도 넘어집니다. 바닥에 엎드린 두 아이가 서로 묻습니다. “너 어디로 가는 거야?” “몰라, 나도....”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달려가는 아이와 안간힘을 다해 뒤 쫓는 아이가 바로 우리 모습 아닙니까? 왜 일합니까? 왜 죽도록 일합니까? 왜 이토록 일이 많습니까? 무엇 때문에 바쁘게 삽니까? 우리는 이 땅에서 무슨 일을 하며 어떻게 일을 하며 진정한 삶의 목적과 의미를 추구할 것인지 성경에서 그 답을 배워야 합니다. 말씀 안에서 바른 인생관과 가치관과 세계관을 정립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지으신 이유와 부르신 목적과 보내시고자 하는 곳을 깨달아야 합니다. 바쁜 삶의 리듬 가운데서도 그렇게 주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영원한 안식을 누리기까지 달려갈 힘을 얻을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어느 길을 걷고 있습니까?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나그네 길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바울은 자기의 달려갈 길을 다 가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는 의의 면류관이 기다리고 있다고 확신하였습니다(딤후4:7-8). 누구나 한번은 가야하는 이 나그네 인생길을 끝까지 말씀과 건강과 행복과 사명으로 승리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2. 한정된 길입니다

  본문 9절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이 때 요셉은 39세였습니다. 30세에 총리가 되고 7년 풍년과 2년 흉년이 지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요셉은 야곱이 91세때 낳았고 그것은 그가 밧단아람으로 간지 14년이었으므로 결국 야곱이 집을 떠나 밧단아람으로 갔을 때는 77세였다는 계산이 됩니다. 아브라함은 175세를(25:7) 이삭은 180세를 (35:28) 살았습니다. 야곱은 애굽에서 17년을 더 살고 147세에 죽었습니다(47:28). 역시 조상의 나이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야곱은 바로에게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라고하였습니다. 인생은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습니다(약4:14). 우리는 인생이 한정된 것임을 입으로는 시인하면서도 행동은 마치 이 땅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시기와 질투와 욕심과 교만하게 살고 있습니다.


  암에 걸려 죽음을 앞둔 젊은 여인이 얼마나 주어진 시간을 아까워하는 것에 비하면 건강하게 살고 있는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고 사는 때가 많습니다. 영국에 살던 두 아이의 엄마인 샬롯 키틀 리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향년 36세, 대장암 4기 진단 후 간과 폐에 전이되어 25회 방사선 치료와 39번의 화학 요법 치료도 견뎌 냈지만 끝내는 그녀가 남긴 마지막 블로그 내용을 소개합니다. “살고 싶은 나날이 이리 많은데 저한테는 허락하지 않네요. 내 아이들 커가는 모습도 보고 싶고 남편에게 못된 마누라도 되면서 늙어보고 싶은데 그럴 시간을 안 주네요. 살아보니 그렇더라고요. 매일 아침 아이들에게 일어나라고 서두르라고 이 닦으라고 소리 지르는 나날이 행복이었더군요. 살고 싶어서 해보라는 온갖 치료 다 받아봤어요. 기본적 의학 요법은 물론 기름에 절인 치즈도 먹어보고 쓰디쓴 즙도 마셔봤습니다. 침도 맞았지요.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귀한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장례식 문제를 미리 처리해 놓고 나니 매일 아침 일어나 내 아이들 껴안아 주고 뽀뽀해 줄 수 있다는 게 새삼 너무 감사하게 느껴졌어요. 얼마 후 나는 그이의 곁에서 잠을 깨는 기쁨을 잃게 될 것이고 그이는 무심코 커피 잔 두 개를 꺼냈다가 커피는 한 잔만 타도 된다는 사실에 슬퍼하겠지요. 딸 아이 머리 땋아줘야 하는데 아들 녀석 잃어버린 레고의 어느 조각이 어디에 굴러 들어가 있는 지는 저만 아는데 그건 누가 찾아 줄까요?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고 22개월 살았습니다. 그렇게 1년 보너스로 얻은 덕에 초등학교 입학 첫날 학교에 데려다 주는 기쁨을 품고 갈 수 있게 됐습니다. 녀석의 첫 번째 흔들거리던 이빨이 빠져 그 기념으로 자전거를 사주러 갔을 때는 정말 행복했어요. 보너스 1년 덕분에 30대 중반이 아니라 30대 후반까지 살고 가네요. 중년의 복부 비만이요? 늘어나는 허리둘레 그거 한번 가져 봤으면 좋겠습니다. 희어지는 머리카락 (greying hair)이요? 그거 한번 뽑아 봤으면 좋겠습니다. 그 만큼 살아남는다는 얘기잖아요. 저는 한번 늙어보고 싶어요. 부디 삶을 즐기면서 사세요. 두 손으로 삶을 꼭 붙드세요. 여러분이 부럽습니다.”(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 눈물나도록 살아라.(Live th the point of tears) 우리는 정말 감사해야 합니다. 이렇게 살아 숨 쉬고 생활 하니깐요. 오늘은 어제의 누군가가 그렇게 살고 싶어 했던 하루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예외 없이 한정된 길을 걷고 있습니다. 반드시 끝이 있습니다. 죽음의 순간은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불안한 삶이 아닌 하나님을 바라보고 맡기고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전3:11).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과 영생과 천국을 주셨습니다. 한정된 길임을 알고 겸손하게 기도하고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한정된 길을 주님과 같이 기쁘고 즐겁게 영원을 바라보며 찬송하며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3. 험악한 길입니다

  본문 9절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야곱은 “험학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야곱은 형 에서와의 갈등 및 도피와 외삼촌 라반과의 불화와 세겜 살육 사건과 요셉과의 생이별 등과 같은 일련의 사건들을 돌이켜 볼 때 이러한 야곱의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그러나 훗날 야곱도 고백했듯이(48:15-16) 이 모든 날들은 하나님의 섭리하에서 사랑하는 자식을 양육시키기 위한 연단의 기간이며 오직 하나님만을 의뢰키 위한 성화의 기간이었습니다. 고난이 유익이 되게 하십니다(시119:71). 야곱의 생애를 통해 성경은 서로의 가는 길 역시 쭉 뻗은 고속도로가 아니라 갈등과 아픔과 고통과 눈물과 위기가 있는 험한 산길입니다.


  정채봉 작가의 동화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어느 날 상처 입은 독수리들이 모였습니다.

왕따당한 독수리, 배신당한 독수리, 시험에 떨어진 독수리, 사업에 실패한 독수리들이었습니다. 모두 자기가 제일 불행하다고 여겼고 이리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결정했습니다. 죽음의 언덕 밑으로 막 떨어지려 할 때 저 멀리 영웅 독수리가 날아와 지금 뭐하느냐고 소리쳤습니다. 너무 힘들어 죽기로 했다는 독수리들에게 영웅 독수리가 몸 곳곳의 상처들을 보여 주며 말했습니다. “이건 나무에 찢겼고 이건 다른 독수리에게 할퀴어진 자국이다. 마음의 상처는 훨씬 많아! 상처 없는 새가 어디 있겠느냐? 일어나 날자!” 그런데 상처가 상처로만 남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나무의 나이테처럼 누구나 살아온 만큼의 아픔과 상처가 있습니다. 상처를 받아 본 사람은 상처받은 또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위로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상처를 공감하고 치유하기 위해 인간으로 오셔서 상처를 입으신 ‘상처 입은 치유자’십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만이 아니라 그분의 상처로도 우리를 치유하십니다. 십자가 앞에 당신의 응어리진 마음과 아픔과 상처를 다 내려놓으십시오. 그리스도인들에게 상처는 사명입니다. 상처는 우리를 치유받고 치유하는 자로 살아가게 합니다. 우리의 상처는 예수님으로 인해 별이 됩니다.


  우리의 인생이 잘 되고 기쁘고 좋은 일도 많지만 때로는 안 되고 슬프고 고통스러운 일도 많습니다. 의로운 욥도 인생 최고 고통을 당했습니다. 야곱도 딸 디나의 수난과 요셉과의 생이별과 라헬의 죽음 등... 고난과 아픔이 끝이 없습니다. 산 넘어 산입니다. 육적인 생활로 험악하지만 영적인 생활은 더 험악합니다. 그래도 참고 인내하고 기도하고 찬송하고 사명 감당하고 하나님 사랑하는 승리하는 인생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사랑하는 번동가족 여러분!

  여러분의 나이가 몇입니까? 수고하고 고생하셨습니다. 잘 하셨습니다. 인생은 나그네 길이고 한정된 길이고 험악한 길입니다. 하나님을 끝까지 믿으면서 기도하고 찬송하고 끝까지 사명을 잘 감당하는 이 시대의 야곱 같은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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