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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Worship broadcastof Bundong church

등록일 : 2019.09.20   조회수 : 441   설교본문 : (요한 복음 6 : 5 - 13)

오늘 우리의 손

  신학교 졸업식에서 한 학생이 성경을 손에 들고 나와 졸업식 대표 인사를 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교수님들, 아무 걱정 마십시오. 우리는 말씀을 붙들고 살 것입니다.” 그런데 그날 설교자로 강단에 선 교수는 이런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제군이 말씀을 붙들고 살겠다는 것은 정말 좋은 결심이네. 그러나 진정한 승리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제군이 말씀을 붙드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제군을 붙들어 주는 경험이 필요하네. 그때 제군은 진정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갈 것이네.” 그렇습니다. 지나간 날에 말씀이 나를 붙들고 그 말씀으로 고난에서 벗어난 경험이 있는 사람은 결코 오늘의 환난 때문에 절망하지 않습니다.  그는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주님이 어제 내 기도에 응답하시고 약속의 말씀으로 나를 건지신 주님이 오늘도 내 기도에 응답하시고 약속의 말씀으로 나를 지켜 주실 것을 믿습니다. 신앙생활의 기본은 우리 믿음의 근거가 되는 주님의 말씀인 성경을 잘 이해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우리 신앙이 살아 있는 신앙이 되려면 그 말씀이 삶 속에서 역사하는 것을 실제로 체험해야 합니다. 절망을 이기는 근거는 바로 생명력 있는 말씀에 사로 잡히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 가운데는 여러 가지의 기갈이 있습니다. 지식의 기갈, 사랑의 기갈, 자유와 빵과 영적인 기갈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은 영적인 면과 동시에 육적인 면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육신이 살기 위해서는 빵이 필요합니다. 영적인 신앙인에게 있어도 육적인 면이 필요하고 육적인 인간에게도 영적인 풍성함이 필요합니다. 육적인 요구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반면 영적으로 반드시 필요합니다. 영육이 반드시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오병이어의 표적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오늘 오병이어의 기적이 있기까지 여러 사람의 손이 필요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어떤 손이 되어야 하는지 말씀을 통해서 은혜를 받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손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1. 한 아이의 드리는 손

  본문 9절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한 아이’의 헬라어 ‘파이다리온’은 소년, 젊은이, 젊은 종을 의미합니다. 보리떡 다섯 개는 일반적 유대 사람들의 보통의 주식입니다. 밀가루로 만든 빵이었습니다. 누가복음 11:5에서는 한 사람의 한 끼의 식사를 위해서는 빵 세 덩어리가 필요함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물고기의 헬라어 ‘옾사리온’은 소금에 절이거나 이미 구운 물고기로 추정됩니다. 이는 밀가루처럼 부드럽지 못한 거치른 보리떡을 먹을 대 목에 걸리지 않게 하기 위해 반찬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오병이어는 작은 분량의 음식임에 반해서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은 엄청난 것임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에서 나온 것입니다. 본 구절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이백 데나리온의 돈이 있어야 된다는 빌립과는 대조적으로 안드레는 매우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안드레는 매우 절망적인 상황에서 매우 재빠르게 한 아이의 보잘 것 없는 도시락을 발견해 내어 예수님께 드리게 함으로 예수님의 행동을 기대케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라는 안드레의 말은 빌립보다는 비합리적이고 비계산적이기는 하지만 절망적이지 않은 그의 믿음과 행동은 결국 큰 기적을 낳게 하는 기초와 동기가 되었습니다. 안드레만큼만 해도 잘 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은 비평과 비난과 말로서 끝나는데 안드레는 그래도 오병이어를 가진 아이를 찾아 에수님께 데리고 오는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한 어린아이가 자기의 오병이어를 자가기 먹지 않고 예수님께 드렸다는 사실이 귀하고 놀라운 것입니다. 어릴수록 자기의 것을 남에게 드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5 가지 습관이라는 책에서 골드 교수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첫째, 걸음걸이가 빠르다. 걸음걸이가 빠른 것은 성취욕과 부지런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둘째, 앞자리에 앉거나 앞쪽에 선다. 앞자리에 앉는 것은 적극적이고 진취적이고 뒷자리에 앉는 것은 소극적이고 방관적이라는 것이다. 셋째, 시선을 집중시킨다. 강의 시간이나 대화할 때 상대방의 눈을 바라보고 시선을 집중시키는 사람은 자기 분야에 집중력이 강하고 학업 성적이 월등하게 앞설 가능성이 좋다. 넷째, 항상 웃음 띤 얼굴이다. 웃음은 좋은 인간 관계를 맺게 해준다. 다섯째, 모든 일에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표현한다. 고통 당할 때 낙심하거나 누구를 원망하는 사람은 발전이 없다. 


  안드레는 안 될 줄 번연히 알면서 예수님께 한 아이를 데리고 왔습니다. 이런 소용이 없다고 생각된 재료가 예수님께 드려졌을 때 남자와 여자와 어린이 이만명을 먹이고도 남음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헌신하는 사람은 그의 자격의 유무를 막론하고 큰일을 할 수 있습니다. 한 아이처럼 내 것을 예수님께 드리는 이 시대의 성도들을 통해서 예수님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한 아이의 드리는 손이 다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2. 예수님의 축사하시는 손

  본문 11절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예수님은 한 아이의 오병이어를 받으신 후에 사람들을 50명 혹은 100명씩 잔디에 앉게 하셨습니다. 기적에는 질서가 필요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순종과 기대감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능력은 무한하지만 능력을 결코 남용하지 않으셨습니다. 필요한 곳에서 필요한 만큼만 사용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배척하는 곳에서는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마 13:57-58). 예수님은 오병이어를 받으신 후에 축사하셨습니다. ‘유카리스테오’는 감사를 드리며 축복한다는 뜻입니다. 작은 것을 받으시고 감사하고 축복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존경스럽습니다. 가장 작은 것을 가장 큰 것으로 받으셨습니다. 여기서 빌립의 합리적이고 계산적인 사고가 빗나갔음을 증명해 줍니다. 예수님은 보잘 것 없는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모든 무리를 먹이시되 무리들이 원하는 대로 배불리 먹게 하시고도 남게 하셨습니다. 남자만 오천 명이니 어린아이와 여자를 합하면 족히 2만 명 이상도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찮은 것을 가볍게 여기시지 않고 그것을 토대로 큰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최고의 능력자인 예수님이 최고의 겸손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손은 구원과 사랑과 능력의 손이십니다. 가장 작은 것을 가장 크고 많게 하시는 손이십니다. 예수님의 손이 들리고 닿는 곳마다 치유와 생명과 기적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손을 바라보고 구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떡이 아닌 예수님 자신을 구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시편 105편 4절).


  에펠탑이 건립 13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건립될 당시 시민과 예술가들의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파리의 고풍스러운 거리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300m짜리 흉물스러운 고철덩어리라며 반대가 극심했습니다. 프랑스정부는 20년 후엔 철거하겠다는 조건으로 건립했습니다. 20년 후 약속대로 에펠탑을 철거하려 하자 여론은 오히려 그대로 두자는 것으로 돌아섰습니다. 시민들이 매일 에펠탑을 보다 보니 정이 들어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흉물스럽게 여겨졌던 그 철제구조물은 이제 프랑스의 랜드마크가 됐고 전 세계인들에게 사랑받는 건축물이 됐습니다. 그래서 자주 보는 것만으로 호감도가 올라가는 현상을 ‘에펠탑 효과’라고 부릅니다. 신앙에도 ‘에펠탑 효과’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십자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던 그 당시에 가장 흉물스러웠던 십자가를 은혜의 에펠탑으로 바꿔놓으셨습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갈 6:14) 십자가를 바라보면 볼수록 우리는 예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에 가까워집니다. 십자가에 대한 노출 횟수는 우리로 하여금 은혜의 인지도를 높여주고 사랑의 호감도를 올려줄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오직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께 드리고 순종하고 주시는 은혜나 받으면 됩니다. 사탄은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성도를 불행하게 하고 죽이는 지옥으로 끌고 가지만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치유하시고 천국으로 인도하십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축사하시는 손’이십니다. 예수님의 손이 임하는 곳에 놀라운 은혜와 감동과 변화와 생명의 역사가 강하게 나타납니다. 예수님의 축사하시는 손이 여러분의 마음과 인생과 가정과 아픔과 문제와 교회를 만져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축사하시는 손이 되어 많은 사람을 살리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3. 제자들의 거두는 손

  본문 11~13절 “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빌립이 말한 바대로 ‘조금씩’ 식사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원대로 주셨고 배부르게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모아진 떡 조각들은 예수 안에 거하고 결코 잃어버린바 되지 않은 성도들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누구도 버리거나 잃지 않으십니다. 유대인들은 개개인들이 여행 시에 필수품을 챙겨 가지고 다니는 바구니를 가지고 다녔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의 바구니에 남은 음식을 담아 가지고 오게 하셨고 그 결과가 열 두 바구니였습니다. 예수님은 버리지 않으시고 모으시는 분이십니다. 모두 거두어야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한 조각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작은 사람과 작은 일도 예수님은 가장 크게 보시고 사랑하십니다. 사람이나 물건을 쓰고 버리시는 분이 아니라 끝까지 귀하게 여기시고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실수하고 죄를 지을 때마다 버렸다면 오늘 여기에 남아 있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거두시는 예수님의 손 때문에 오늘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거두는 일을 걱정하지 않으시고 열 두 제자들을 사용하신 것처럼 오늘 이 시대에 우리 모두를 귀하게 사용하십니다. 사람과 물질과 하나님의 사명을 거두는 손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느 사막에 조그마한 오두막집을 짓고 사는 노인이 있었습니다. 그 집은 울창한 야자수 숲으로 둘러싸였고 마당 한복판에는 작은 샘이 있었습니다. 사막을 지나는 나그네들은 이곳에 들러 휴식을 취했습니다. 샘물로 목을 축이고 그늘에서 피로를 풀었습니다. 노인은 나그네들이 행복해하는 것을 보며 보람을 느끼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가끔 나그네들이 감사의 표시로 동전을 건네주었습니다. 노인은 금고에 돈이 점점 쌓이자 욕심이 생겼습니다. ‘동전이 가득 차면 그 돈으로 넓고 큰 집을 지으리라.’ 이렇게 생각한 노인은 나그네들에게 노골적으로 돈을 요구했습니다. 돈을 주고 물을 사 먹는 나그네들은 노인에게 고마움을 느끼지 않았고 물을 예전처럼 귀하게 여기지 않고 낭비했습니다. 어느 날 노인은 샘물이 점점 말라 가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야자수가 샘물을 흡수하고 있어. 샘물을 보존하려면 야자수를 잘라야 해. 조금만 더 물을 팔면 좋은 집을 지을 수 있을 거야.” 노인은 야자수를 모두 베어 냈습니다. 사막에는 시원한 그늘이 사라졌고 샘물도 곧 말라 버렸습니다. 이제 노인의 오두막집을 찾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노인은 뜨거운 햇볕을 견디지 못한 채 숨지고 말았습니다. 과욕이 불러온 비극이었습니다. 성경은 탐욕이 사망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분명히 경고합니다(약 1:15). 우리 삶과 영혼을 파멸로 이끄는 그 어떤 탐욕의 죄도 결코 용납해선 안 됩니다. 


  거두는 목적은 나누기 위함입니다. 욕심과 욕망을 버려야 남게 되고 풍성하게 됩니다. 우리에게 물질을 주신 것은 선한 일을 하도록 함입니다. 선한 일을 할 때 더 풍성하게 채우십니다(고후 9:8). 예수님과 제자들은 먼저 자신의 필요를 채우지 않으셨습니다. 굶주린 군중들에게 다 나누어 주셨습니다. 남은 부스러기를 거두셨습니다. 욕심과 낭비는 불신앙이고 망하는 길입니다. 그러나 섬김과 절약은 신앙이고 축복입니다. 예수님처럼 거두어서 섬기는 삶을 사는 성도가 됩시다. 우리의 손이 나누고 거두는 예수님이 기뻐하시고 사용하시는 거룩한 손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사랑하는 번동가족 여러분!

  오병이어의 놀라운 기적은 우연이나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한 아이의 드리는 손과 예수님의 축사하시는 손과 제자들의 거두는 손이 합하여 놀라운 기적을 이루었고 열두 광주리가 남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손이 이 시대에 드리고 축사하고 거두는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손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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