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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Worship broadcastof Bundong church

등록일 : 2020.03.20   조회수 : 2,066   설교본문 : (빌립보서 4:1-3)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오래 전에 권사님이 한 아주머니를 전도하고 흥분하며 말씀하시던 것이 기억납니다. “장터에 콩나물 파는 아주머니 있지요? 그런데 그 분이 표정이 늘 안 좋아요. 그래서 내가 마음 먹고 전도했지요. 처음에는 관심 없어 하더니만 몇 차례 이야기를 듣더니 조금씩 반응을 보였어요.” “그 분이 뭐라고 했는데요?” “사실 나는 글을 모르니까 교회에 갈 수 없어요.”그러는거예요 그래서 “그런 것은 전혀 상관없어요. 글을 모르면 듣기만 하면 되고 예수님을 믿는 것이 중요한 거예요.” 그랬더니 “정말요?”하시더니 내가 교회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하니까 약속한 시간에 옷을 차려입고 나왔어요.“ 그 아주머니는 교회에 나오면서부터 표정도 바뀌고 행동도 달라졌습니다. 어느 날 시장에 나가서 보니 글을 모른다는 그 아주머니가 성경을 읽고 있었습니다. 예배 때 들었던 설교 본문을 성경에서 찾아보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결국 그 아주머니는 예수님을 믿고 글을 깨우쳤고 삶이 바뀌었고 하나님 손길 안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찾아봐도 예수님과 비견할 만한 선물은 없습니다. 그 놀라운 선물을 받아들이고 나면 실망, 좌절, 고통 가운데서도 소망의 빛을 보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사람은 그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 사랑의 손길을 느끼고 무한한 기쁨을 맛보며 살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향한 사랑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비록 그의 몸은 로마의 감옥에 있었으나 항상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상황을 뛰어 넘는 믿음과 사랑을 엿볼 수 있습니다. 신앙은 전천후적인 것이어야 합니다. 수 많은 유혹과 장애와 박해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 지나고 견디고 이겨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최고의 기적이고 최고의 축복입니다. 우리 생애에 가장 잘 한 일입니다. 최고의 업적이고 선물입니다. 나만 믿는 것이아니라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거침없이 그리고 담대하게 전해야 합니다. 누군가 나를 통해서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은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평생동안 잘 믿고 전하고 충성하여 우리의 이름들이 생명책에 꼭 기록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전파한 제자들에게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될 것으로 기뻐하라”(눅10:20)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은 예수님을 위해서 수고한 사람들의 이름을 기억하지 않지만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들의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계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계20:15). 생명책이라는 말씀은 계시록에 7회 나타납니다. 여러분 모두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1. 주 안에 서라
  본문 1절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사도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을 향하여 사랑, 사모, 형제들, 기쁜, 면류관이란 깊고 절실한 애정을 역력히 표현하고 있습니다. 표현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빌립보 교인들이 영적으로 성장하며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것은 큰 기쁨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수고가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며 하나님이 주실 상의 근거였습니다. 칭찬으로 끝나지 아니하고 “주 안에서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서라’의 헬라어 ‘스테코’는 현재 능동태 명령법으로 진실되게 서다, 굳게 서다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원래 병사가 전쟁 중에 적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초소에 굳게 계속 서 있는 모습을 표현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의 어려운 상황들을 염두에 두고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빌립보 교인들은 어려운 형편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고 견고하게 서 있어야 했으며 그것은 ‘주 안에서’만 가능했습니다. 주님을 떠나서는 어느 교회나 교인도 굳게 서 있을 수 없습니다. 성도들이 어려운 시험이나 고난을 당할 때 굳게 그리고 진실되게 설 수 있는 것은 항상 주와 동행할 때 비로소 가능합니다. 어떠한 가운데서도 주님을 떠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주님은 평강을 선사하실 때 우리에게 고백을 요구하십니다. 고백은 얼마나 큰 능력인가요? 많은 기혼자를 결혼으로 이끈 것은 사랑의 힘이 아니라 고백의 힘이었습니다. 고백은 우리의 사랑을 언어 가운데 담아서 건네는 행위입니다. 고백 가운데 우리는 어떤 결단을 내릴까요? 간혹 “내가 너를 좋아한다!”라는 진술을 고백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것은 네가 나의 현재 취향에 맞는다는 진술일 뿐입니다. 상황이 달라지면 취향도 달라지고 두 사람의 결합도 위태로워질 수 있기에 고백은 단순한 취향의 표현이 아닙니다. 고백이란 두 존재의 강력한 연합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있는 것입니다. “당신이 내 삶의 전부라는 결단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내 삶에서 어느 것도 당신과 나 사이의 관계를 흔들 수 없습니다”라고 가치의 전도를 선언하는 순간이 고백의 순간입니다. 믿음의 고백을 하는 것은 주님을 내 문제나 온 세상의 모든 것보다 크신 분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의 고백이 펼쳐질 때 주님은 우리를 염려와 불안으로부터 지켜 주십니다. 세상 어느 것도 흔들지 못하는 하늘 평안을 주십니다. 믿음의 고백은 삶의 격랑 속에서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길입니다.


  수 많은 단어와 말이 있습니다. 미움, 저주, 불행, 후회, 비극, 지옥같은 말은 소름이 끼칩니다. 그러나 사랑, 사모, 형제들, 기쁨, 면류관과 같은 단어는 소망과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주 안에 있는 자들은 이런 언어를 사용합니다. 이런 언어를 사용하게 되면 모두가 주 안에 서게 됩니다. 가정과 교회 안에 굳게 서 있을 수 있습니다. 주 안에 서 있어야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됩니다. 우리의 빠르고 짧은 생애 동안에 아름답고 은혜로운 언어를 사용합니다. 어떠한 경우에라도 주님을 떠나거나 밖으로 밀어 내지 맙시다. 우리의 영적인 현 위치와 주소가 사단, 세상, 죄, 돈, 타락 주 밖에 있지는 않은가? 다시 방향과 각도를 조절하여 주 안으로 들어가 굳게 믿음을 지키고 사람을 지키고 사명을 잘 감당하는 생명책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2.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본문 2절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두 여인의 이름이 나옵니다. 순조로운 여행이라는 뜻의 유오디아와 행복한 기회라는 뜻의 순두게입니다. 두 여인이 빌립보교회에서 유력한 존재로서 많은 활동을 한 대신에 큰 말썽도 일으킨 모양입니다. ‘권하노니’ 라는 말씀으로 보아 두 여인이 서로 다툰 모양입니다. 권하고 권하노니는 바울의 솔직성과 예외성을 보게 됩니다. 빌립보 교회는 바울의 전도를 받은 자주 장사 루디아에 의해서 세워진 교회로서(행16:13-15) 상대적으로 여성의 역할이 컸던 교회였습니다. 따라서 이 두 여인의 다툼과 분쟁이 속히 해결되도록 화해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는 말씀입니다. 교회에도 보면 같은 마음이지만 악하고 독한 것이 너무 많다. 끼리 끼리적이고 이기적이고 마귀적이고 살인적이고 비신사적인 것들이 양의 옷을 입고 성도된 교회를 어지럽히고 파괴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주 밖에” 같은 마음은 사탄의 마음입니다. 결코 용납해서는 안 됩니다. 같은 마음을 주 안에서만 품을 수 있습니다. 신앙을 떠나서 같은 마음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바울은 두 여인이 교회와 주님으로부터 떠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화해와 일치의 기본 원리는 주님과의 영적 연합에 있습니다. 모든 성도와 일꾼들은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내 마음을 주님의 마음에 맞추어야 합니다. 모든 성도들은 더불어 화목하고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내 것과 내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가 주님의 것이고 주님의 사람입니다. 
 
  어떤 젊은이가 선교사가 되기 위한 꿈을 갖고 신학공부를 마친 후 선교사로 나갈 준비를 하던 중 교통사고를 당해 한쪽 다리를 절단하게 되었습니다. 의족을 하게 된 그는 “하나님 제가 선교사가 되겠다는데 어찌하여 다리를 가져가십니까?라고 매일 울부짖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선교사 모집광고를 보았습니다. 그는 ‘설마, 나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라는 마음을 가졌지만 신청을 했습니다. 그런데 합격을 하여 아프리카 선교사로 갔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어느 날 그는 식인종을 만나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식인종들은 그를 잡아먹으려고 달려들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고무다리를 빼어 던졌습니다. 그러자 식인종들은 그것을 뜯어 먹어보더니 깜짝 놀라 ”이 사람은 신임에 틀림없다“라고 외치며 모두 선교사 앞에 무릎을 꿇었다고 합니다. 그제서야 그는 자기의 다리 하나가 없어진 까닭을 깨닫고 남은 한 다리도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서원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뺄셈에는 반드시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산수는 더하기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빼기도 있습니다. 곱하기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누기도 있습니다. 산수 공부를 잘 하려면 더하기 빼기 모두 다 잘해야 합니다. 아이에게 더하기만 가르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더하기만 있는 것으로 생각하면 오해입니다. 신앙생활은 빼기부터 시작합니다. 권투선수들도 상대를 때리는 훈련부터 하는 것이 아니라 맞는 훈련부터 한다고 합니다. 미식 축구선수들도 넘어지는 훈련부터 한다고 합니다. 그것이 기본기라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교회와 가정에서 빼야 될 것이 너무 많습니다. 나의 공로와 업적과 교만과 혈기와 분쟁을 빼야합니다. 우리도 모르게 우리에게는 언제부터인가 유오디아와 순두게적인 교만과 분쟁이 우리 안에 가득 차 있습니다. 누가복음 6장 45절에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표정과 언어와 행동과 삶은 마음에 가득한 표현입니다. 악과 교만과 분쟁을 버리고 태워버려야 우리가 살고 교회가 평안합니다. 책망 받은 유오디아와 순두게적인 악하고 추한 것을 회개하고 씻고 태워버림으로 자신과 가정과 교회를 평안하게 하고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는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임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3. 주 안에서 동역자들을 도우라
  본문 3절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사도바울은 “멍에를 같이한 자”가 구체적으로 누구인가 알 수 없으나 바울과 함께 복음사역에 포함했으며 또 빌립보 성도들을 도우라는 바울의 부탁을 받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려운 부탁은 아무에게나 할 수 없습니다. 부탁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것은 행복합니다.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은 유오디아와 순두게를 가리킵니다. 남의 단점을 말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끼친 공을 높여 주는데 대사도의 위대한 면모를 엿볼 수 있습니다. 허물과 실수는 사랑으로 덮어주는 것입니다. 두 여인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언제나 사람을 살리는데 서야 합니다. 글레멘드와 그 외에 바울의 동역자들을 도우라고 하였습니다. 글레멘드는 바울의 동역자이거나 동행자이거나 제자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들 모두는 각자 다르지만 하나님 나라에 영생의 보장을 받고 있습니다. 땅 위의 교회가 서로 분규 할지라도 영원한 구원을 의심할 수 없습니다. 다같이 생명책에 기록된 성도끼리 분쟁해야 하는 것이 보이는 교회의 나약성과 불완전성입니다. 이 약점을 각자 뉘우치며 하나되기를 힘쓰는 곳에 또한 교회의 영광이 나타날 것입니다. 어쨌든 나만큼은 용서하고 사랑하고 도와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때가 되면 이룰라는 열매가 맺혀지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됩니다(롬8:28).


  미국 오하이오주의 부호 테일러의 농장에 초라한 행색의 청년 한 명이 찾아왔습니다. 17세의 ‘짐’이라는 청년이었습니다. 짐은 건초 더미에서 자도 좋으니 일자리를 달라고 했습니다. 농장에 채용된 짐은 3년 동안 창고에서 먹고 자며 부지런히 일했습니다. 그러던 중 짐은 테일러의 외동딸과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이를 눈치챈 테일러는 불같이 화내며 말했습니다. “돈도 없고 가문도 비천한 주제에 감히 내 딸을 넘보다니 말도 안된다.” 테일러는 짐을 마구 때리고 빈 손으로 내쫓았습니다. 그 후 35년이 지난 어느 날, 일꾼들이 창고를 헐다가 짐의 보따리를 발견했습니다. 그 속에 들어 있던 책에는 짐의 본명인 ‘제임스 A.가필드’가 적혀 있었습니다. 농장에서 쫓겨난 짐은 오랜 세월 후 놀랍게도 미국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테일러는 짐의 진실함과 성실함을 무시했기 때문에 대통령을 사위로 둘 기회를 놓친 셈입니다. 우리 역시 자기 생각이 너무나 강해 예수님을 몰라봅니다. 혹은 예수님을 믿는다면서도 세상을 더 사랑해서 그분 말씀을 듣지도 따르지도 않습니다. 진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왜곡된 판단을 합니다. 그 결과는 사람을 알아보지 못한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재앙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찾아오실 때 그분을 외면하는 자가 아니라, 그분 말씀을 듣고 영접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시선이 유명하고 출세하고 돈 많고 화려한 사람들에게 꽂혀 있습니다. 그래서 작고 가난하고 아프고 초라한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우리가 지금 서로를 안 보고 있고 못 보고 있습니다. 서로 눈에 들어오지 않고 있습니다. 때로는 가족이나 성도들끼리도 하찮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많은데 사람이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 모두 회개하고 정신차려야 합니다. 사람을 귀하고 사람답게 인정하고 존중해야 우리가 살고 가정과 교회가 살고 행복하게 됩니다. 사도바울이 복음에 힘쓰던 여인들과 동역자들을 도우라고 부탁하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작은 자를 돕는 것이 예수님을 돕는 것입니다(마25:40). 우리 주위에 어리고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사람들과 전도자와 목회자와 선교사들을 돕기를 바랍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귀히 여기는 사람들이고 그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을 돕는 것이 주의 일 하는 것이고 최고의 수지 맞는 것이고 대박이 나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 동역자들을 돕는 생명책에 이름이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사랑하는 번동가족 여러분!
  여러분의 이름이 생명책에 꼭 있기를 축원드립니다. 주 안에 서야 합니다.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시기를 바랍니다. 주 안에서 동역자들을 돕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더욱 힘쓰고 충성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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