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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Worship broadcastof Bundong church

등록일 : 2019.09.11   조회수 : 1,711   설교본문 : (시편 105 : 1 - 4)

여호와께 감사하라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늘 가게에서 매일 아침 제일 먼저 온 사람에게 원하는 것을 거저 준다고 했더니 매일 아침 열심을 다하여서 제일 먼저 나타나는 사람이 한 사람 있었는데 그는 어떤 때는 조금 늦으면 새치기를 해서라도 제일 앞자리에 섭니다. 조금 더 늦으면 울며불며 읍소를 해서라도 반드시 제일 앞자리에 서서 자기의 원하는 것을 받아 갔습니다. 이 사람은 금고를 가져가기도 했고 출세의 상자를 가져가기도 했고 성공의 상자를 가져가기도 했고 쾌락의 상자도 가져갔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어느 날 아침에 검은 테를 두른 상자도 가져갔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검은 테를 두른 상자를 가져간 뒤에는 다시는 그 가게에 나타나지 않자 상점의 점원이 가게의 주인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그 개걸스런 소유자가 이제는 왜 오지 않습니까? 어제 가져간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이렇게 물어보았더니 상점 주인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무엇이나 가져가겠다는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줄 것이 무엇이겠느냐? 죽음의 상자를 주었더니 그것도 넙죽 받아가더구나" 그러면서 이런 말을 덧붙였다고 합니다. “그 사람은 오늘만 있지, 내일이 없었던 사람이야”. 여기에서 우리들은 내일을 잊어버리고 오늘 눈에 보이는 것에게 집착하고 살아가고 있는 현실의 노예로 전락된 인간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사람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살아온 어제도 존재하는 것이고 살아가는 현재도 존재하는 것이고 그리고 살아야 할 내일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사람은 내일을 향하여 열려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로 어제를 허락하여 주셨고 은혜로 오늘도 허락하여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내일도 은혜로 허락하여 주실 것 이라는 것을 우리는 반드시 알고 있지 않습니까? 어떻게 보면 인생이야말로 지나간 어제와 살고 있는 오늘과 돌아올 내일을 살아가는 존재가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인간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시간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여호와께 감사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불평과 원망으로는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진실한 자녀는 결코 불평하지 않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이며 하나님 앞에 나가는 사람입니다. 먼저 하나님 앞에 나가면 불평과 불만은 안개처럼 사라집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아니하면 불평과 불만은 산처럼 커지고 많아집니다. 성도가 감사만 해도 잘 하는 것이고 큰일을 하는 것입니다. 불평만하면 불행하고 가장 못난 인간입니다. 불평하다가 끝나는 불행하고 저주받은 인생이 아니라 감사만 하는 축복 받고 행복한 인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추석 명절에도 감사만 풍성한 성도와 가정과 인생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1. 여호와를 찬양하라

  본문 1~2절 “여호와께 감사하고 그의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가 하는 일을 만민 중에 알게 할지어다 그에게 노래하며 그를 찬양하며 그의 모든 기이한 일들을 말할지어다”


  여호와께서 소리를 다하여 노래하고 그의 은혜를 찬양하며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해 행하신 기이한 일들을 말하며 묵상하라는 것입니다. 찬양하라의 히브리어 ‘자마르’는 악기로 연주하라는 뜻입니다. 어떤 일정한 리듬을 동반해서 노래한다는 뜻입니다. 핵심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가 그저 노래할 것이 아니라 일정한 음악적 정형을 갖추고서 노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노래를 받으시는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이실 뿐 아니라 인간과는 구별된 신(神)이시기 때문에 찬양에도 최선의 노력과 정성을 다 바침이 마땅합니다. 


  소와 사자가 있었습니다. 둘은 죽도록 사랑합니다. 둘은 결혼해서 살게 됩니다. 둘은 최선을 다하기로 약속합니다. 소가 최선을 다해서 맛있는 풀을 날마다 사자에게 대접했습니다. 사자는 싫었지만 참습니다. 사자도 최선을 다해서 맛있는 살코기를 날마다 소에게 대접했습니다. 소도 괴로웠지만 참았습니다. 참을성은 한계가 있습니다. 둘은 마주 앉아 얘기 합니다. 문제를 잘못 풀어 놓으면 큰 사건이 되고 맙니다. 소와 사자는 다툽니다. 끝내 헤어지고 맙니다. 헤어지며 서로에게 한 말 “난 최선을 다 했어”였습니다. 소가 소의 눈으로만 세상을 보고 사자가 사자의 눈으로만 세상을 보면 그들의 세상은 혼자 사는 무인도입니다. 소의 세상, 사자의 세상일 뿐입니다. 나 위주로 생각하는 최선, 상대를 못 보는 최선, 그 최선은 최선일수록 최악을 낳고 맙니다. 사랑한다고 말을 하지만 자기의 입장에서만 모든 것을 시도한다면 그것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부부간에나 부모와 자녀 간에 심사숙고할만한 교훈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의 가정들이 병들어가고 있습니다. 가정이 큰 상처를 입고 살아가며 그러므로 결손 가정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해 주신 이 가정이 병들어가고 있는데 어떻게 병든 가정을 건강한 가정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사회도 아니고 학교도 아니고 바로 우리 교회입니다. 교회와 가정은 이웃 사촌간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병든 가정을 우리 교회가 책임지고 치유해야 할 사명이 있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우리의 가정은 절대로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가 없습니다. 


  찬양할 때에 모든 문제는 사라지고 치료되는 것입니다. 내 입장이 아닌 하나님 입장에서 찬양하고 하나님만을 높이는 것입니다. 부모와 자녀와 성도와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처럼 높이고 존중하면 모든 문제는 사라지고 관계는 정상화 됩니다. 모든 병이 깨끗이 치료하고 어둠과 우울증은 사라지고 좋은 것으로 회복이 됩니다. 찬양의 능력은 대단합니다.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하늘의 능력과 기적이 나타납니다. 찬양할 때 원수가 물러나고 지진이 일어나고 풀리고 회개하고 변화되는 최고의 선한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찬양할 때 특별히 남이 아닌 내가 변하는 것입니다. 은혜와 기쁨과 사랑과 용서와 희망의 강한 능력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여호와께 찬양하는 기적이 임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2. 여호와를 자랑하라

  본문 3절 “그의 거룩한 이름을 자랑하라 여호와를 구하는 자들은 마음이 즐거울지로다”


  비길 데 없는 여호와의 거룩하신 이름을 자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여호와를 찬양하고 자랑하는 자들은 마음이 즐거울 것입니다. 즐거운 정도가 아닌 즐거움이 차고 넘친다는 것입니다. 찬양에 있어서 중요한 주제는 하나님이 이름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기뻐 찬양해야 하는데 그 이유는 그것이 우리에게 자신을 알리기 위하여 그분이 택하신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이란 곧 여호와 자신입니다. 거룩하신 성품이십니다. 또한 찬양함과 기뻐함의 주제는 하나님의 마음이 거룩하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빛이 빛을 좋아하듯이 거룩함을 지향하는 자만이 그 사실을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거룩한 성도가 거룩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뻐하고 자랑하게 됩니다. 땅 위에 하나님만큼 거룩한 자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자랑할 때 점점 거룩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거룩해지기를 힘쓰며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고 기뻐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찬양하고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을 기뻐하시고 복을 주십니다. 거룩해지는 최고의 복을 주십니다. 거룩해지는 복이 임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부모를 일찍 여읜 에드워드 보크는 10대 때 할아버지 품을 떠나 생업 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어디를 가든 네가 있는 곳이 이전보다 나아지도록 하는 데 힘써야 한다.”라고 말하며 어린 손자를 떠나보냈습니다. 이후 에드워드는 보스턴의 어느 길모퉁이에서 신문을 팔면서 ‘이 거리를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해야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신문을 팔며 틈틈이 빗자루로 거리를 쓸고 여기저기 나뒹구는 종잇조각과 담배꽁초를 치웠습니다. 세월이 흘러 에드워드는 몇몇 직장을 거쳐 커트스 출판사의 사무실과 서적 판매장을 청소하는 한편 판매원들의 일까지 도와주어 매출을 높이는 데 기여했습니다. 그러다가 점원이 되고 판매부장이 되고 편집부장을 거쳐 나중에는 사장 자리까지 올랐습니다. 그는 자기 유익만을 추구하지 않고 각종 출판물을 값싸게 농촌에 보급하기도 하고 여성의 인권 신장을 위해서도 힘썼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돈을 많이 벌었다고 자랑하면 안됩니다. 내가 번 돈을 세상이 더 나아지게 하는 데 사용하고 있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학벌이 뛰어나다고 재능이 있다고 자랑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나 자신만의 행복을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원리가 세상에 실현되게 하고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이웃과 나누는 것’이 성도의 책임입니다.  


  시편 20편 7절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이름을 자랑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고대 애굽인이나 앗수르인은 특히 많은 병거와 말을 의지하여 적을 침공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오직 여호와를 의지하여 병거와 말들을 격멸한 것입니다. 그것은 다윗이 젊어서 골리앗을 칠 때부터 그랬고(삼상 17:45-51) 모세의 명한대로 행한 것이었습니다(신 17: 16). 오늘 우리는 자랑하는 병거와 말이 많습니다.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것을 자랑합니다. 요한일서 2장 16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모두 인간적이고 이생의 자랑을 버리고 여호와를 자랑하고 여호와만을 자랑하며 감사와 기쁨이 충만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3. 여호와와 능력과 얼굴을 구하라  

  본문 4절 “여호와와 그의 능력을 구할지어다 그의 얼굴을 항상 구할지어다”


  성도는 여호와를 향하고 떠나지 말며 여호와의 얼굴을 항상 구하면서 그의 능력을 구하여 만사형통할 것입니다. 문자적인 뜻은 여호와와 그의 힘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구한다는 것은 그의 전능한 능력을 구한다는 뜻입니다.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새로운 능력을 얻게 됩니다. 다른 번역에서는 여호와를 구하면 강해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시편 전체 줄거리는 이스라엘 초기 역사 속에 나타났던 강한 능력의 하나님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강한 능력의 하나님을 초점으로 잡고 있습니다. 세상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강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엘로힘(Elohim)은 전능하신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강한(Strong), 능한(mighty) 하나님이십니다. 초월적인 신적 능력 및 그 어느 것과도 비교될 수 없는 그 존재의 탁월성을 강조해줍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구할 때에 모든 것과 여러 가지가 아니라 여호와와 여호와의 능력과 여호와의 얼굴을 구하면 반드시 응답해 주시고 마음의 즐거움까지 더하여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구했던 것과 비교가 됩니다. 성숙한 성도가 구하여야 할 기도 제목을 간단하고 분명하게 말씀하여 주십니다. 특별히 시편 105편 4절 말씀을 암송하고 기도할 때마다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한 그리스도인이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후배들에게 당부했습니다. “첫째, 하나님을 첫 번째로 붙들라. 둘째,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 셋째, 의미 있는 인생을 살라. 넷째, 기도하라.” 그가 이런 당부를 한 이유는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으며 치열한 전쟁터와 같기 때문입니다. 마치 나약한 병사가 포탄이 날아드는 전쟁터에서 소총 한 정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예상치 못한 일들을 만나기도 하고 죽음의 위기에 직면하기도 하고 다치기도 합니다. 원하는 대로 살 수 없는 것이 인생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전쟁터와 같은 치열한 세상으로 성도들을 보내십니다. 때로는 내가 선을 베풀어 준 사람에게 뒤통수를 맞기도 합니다. 용서하고 용납해 주었더니 도리어 모함당하기도 합니다. 편법을 쓰는 사람 때문에 손해를 보고 억울함을 당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 헌신했는데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경험하는 고통과 좌절은 하나님의 최종 목표가 절대 아닙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바는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으로 사는 정병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연단과 훈련을 잘 받을 때 순금 같은 믿음의 사람으로 설 수 있습니다. 고난과 시련은 우리를 강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도구입니다. 


  감옥에 갇혀 있는 장기수들 사이에 유행하는 말이 “네게 미래란 없어!”입니다. 마지막 남은 작은 희망조차 앗아 버리는 가혹한 말입니다. 그런데 ‘바깥에’ 살면서도 스스로 만든 절망이란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더는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어?“ 상황은 더 나아지지 않아. 설치지 말고 조용히 현실을 받아들이라고.’ 아닙니다! 우리는 감옥을 부수고 나올 수 있습니다! 문은 열려 있습니다. 좋은 삶을 기대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멋진 미래를 믿기만 하면 됩니다. 좋은 일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병거나 말이나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아닌 여호와와 여호와의 능력과 여호와의 얼굴을 구하는 다윗과 같은 기도의 용사가 됩시다. 나머지는 더하여 주십니다. 이런 기도의 성도가 되시고 기도의 능력을 체험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사랑하는 번동가족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에 그리고 가을에 그리고 추석 명절에 그리고 평생에 여호와께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여호와를 찬양하고 자랑하고 여호와와 능력과 얼굴을 구하는 즐거움과 감사함이 충만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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