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주일예배

Worship broadcastof Bundong church

등록일 : 2019.05.10   조회수 : 3,264   설교본문 : (룻기 1 : 15 - 18)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얼굴을 모릅니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 얼굴이 잘생겼다 못생겼다 말하지만 그 평가는 다른 사람들의 것입니다. 거울이 우리 얼굴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지 않느냐는 의견도 설득력이 없습니다. 우리가 거울에서 확인하는 것은 ‘거울’이라는 매체를 통해 비친 얼굴일 뿐입니다. 입체인 인간 모습을 평면에 가둬 버리는 사진 속의 얼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우리는 자신의 진짜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채 평생을 삽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어려운 것은 이 때문입니다. 소속된 곳에서의 직책이나 소유나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이 나 자신이라고 말하면 편합니다. 그러나 편의성이 곧 진리는 아닙니다. 어느 회사 부장이니 부자니 시민 단체 회원이니 하는 것들을 자신과 동일시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보다 그 안에 숨어 있는 속사람이 더 중요하다고 가르치십니다. 속을 드러내기가 두려워서 우리는 우리가 뒤집어쓴 것이 껍데기인 줄 알면서도 가짜 사람과 소문의 삶에 매달려 사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 속에 무엇이 있는지를 남김없이 아시는 주님 앞에서라면 자신을 내보이기를 거부한다면 그것은 우리를 낱낱이 꿰뚫어 보시는 주님의 능력을 믿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정직하고 겸손하게 주님과 동행하는 진실한 삶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흉년을 피해 나오미가 모압 땅으로 갔습니다. 모압에서 남편 엘리멜렉과 두 아들 말론과 기룐도 죽었습니다. 나오미는 며느리 룻과 함께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습니다. 오늘 말씀은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서 베들레헴으로 돌아 온 룻의 고백입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시어머니 나오미와 함께 하겠다는 감동적인 고백입니다.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이 고백은 모든 자녀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이 고백은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성도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룻의 고백을 들으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넘고 초월한 최고의 축복을 쏟아부어 주셨습니다. 절대적으로 부모와 하나님을 잘 섬기는 행복한 성도와 가정과 교회가 되시기를 축원을 드립니다.


1. 어머니가 가시는 곳에 나도 갑니다

  본문 16-17절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라고 하였습니다. 룻의 동서 오르바를 따르지 아니하고 확고하게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른 것은 시모를 통해 얻은 여호와 신앙 때문이고 또 늙은 시모를 홀로 보낼 수 없다는 뜨거운 효도 때문이었습니다. 룻의 확고한 결심과 아름다운 고백입니다. 젊은 룻은 일생을 과부로 살면서 시모와 신앙과 생사고락을 같이 한다는 결심을 확실하게 세운 것입니다. 룻의 고백은 우리의 신앙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슬프게도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따르기 보다는 자기의 유익과 성공을 위해 주님을 끌고 다니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대장삼아 하나님 가시는 곳마다 따르고 순종해야 합니다. 어떠한 핑계나 변명이 있어서도 안 됩니다.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부인하고(마16:24) 재물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막10:21) 끝까지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주님을 따랐던 제자들(마4:20)과 세리 마태처럼(마9:9) 주님을 따르는 십자가 군병이 되어야 합니다. 상황과 고난과 사람의 성벽과 장애물을 넘어 끝까지 따라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한번은 설교하러 가는데 어떤 차가 너무 위험하게 내 차 앞으로 끼어들었습니다. 그러더니 거침없이 계속해서 내 앞을 막고 갔습니다. 경적을 울려서 주의를 준 다음 앞질러 갈까 하는 생각이 불쑥 들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목사인데 그러면 안 되지’라고 나 자신을 설득하며 참고 참으면서 계속 갔습니다. 마음속으로 계속 이렇게 되뇌었습니다. ‘빵빵거리지 말자. 성질대로 하지 말자. 참아야 하느니라.’ 그런데 그 차가 마침 내가 설교하러 가는 교회의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까. 주차 후 강단에 올라가 설교하면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앞차를 향해 내 성질대로 “빠앙!” 하고 경적을 마구 울렸다면 어땠을까요? 그런 다음 내가 “여러분, 참아야 합니다. 사랑해야 합니다.” 이런 설교를 했다면 아마 그 차 운전자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는 얘기가 될 것입니다. 분노를 참고 나를 앞지른 차를 조용히 뒤따라간 것이 목사로서 내가 한 설교에 권위를 주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삶을 어떻게 사용하실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내가 참은 일이 어떻게 복으로 바뀔지 당시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틀림없이 인내의 열매를 주십니다. 우리가 우리 성질대로 하면 그 성질로 망하지만 믿음으로 참으면 하나님이 높여 주십니다. 그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주님이 가라고 하신 곳과 주님의 뜻이 있는 그 곳이 비록 고난과 십자가라도 우리는 거기까지 따라가야 합니다. 중도에 포기하거나 다른 길로 가서는 안 됩니다. 아골 골짝 빈들이라도 소돔같은 거리라도 바로 거기에 우뚝 서 있어야 합니다. 룻처럼 어머니가 가시는 곳에 나도 같이 가겠다는 고백처럼 그러한 마음으로 부모님을 잘 섬기고 하나님을 잘 섬기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2. 어머니가 머무는 곳에 나도 머뭅니다

  본문 16-17절 가운데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룻의 이 고백 또한 우리의 신앙고백으로 삼아야 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나 부모보다 앞서갑니다. 묻지 않고 순종하지 않고 자기 마음과 고집대로 행동합니다. 하나님과 부모님의 지혜보다 자신의 지식이나 이익이나 목적을 앞세우기 때문에 부모를 무시하고 경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모든 자녀들은 부모를 앞지를 수 없습니다. 어떤 인간도 하나님을 앞지를 수 없습니다. 그것이 허물과 죄입니다. 정도에서 벗어나고 하나님의 과녁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로 그 곳에 우리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머무시고 머물라고 하신 그 곳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그 곳을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 욕심이나 세상이나 사탄을 따라서 함부로 다녀서는 안 됩니다. 자리 이탈이 근무 이탈이고 사명 이탈입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는 바로 그 곳에서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사6:8)라고 화답해야 합니다. 과거 홍해 앞에 도달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역사를 그저 바라만 보았던 것처럼(출14:13) 우리로 그분이 멈추신 곳에 가만히 서서 그분의 기묘하신 인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성경이 가는 곳까지 가고 성경이 멈추는 곳에서 멈춘다”라고 말한 칼빈의 태도야말로 바람직한 신앙의 모습입니다. 주님이 병들고 소외된 자 앞에 서실 때 우리도 서야 하고 머물러야 합니다. 찬송하면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다. 들어보고 나서가 아닌 무슨 말씀을 하시고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가야하고 머물러야 합니다. 


  어떤 공동묘지가 있었습니다. 그 공동묘지 관리인에게 여러 해 동안 한 주일도 거르지 않고 한 여인으로부터 편지와 돈이 부쳐왔습니다. 죽은 자기 아들의 무덤에 신선한 꽃다발을 갖다 놓아 달라는 부탁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에 병색이 완연한 부인이 커다란 꽃다발을 안고 와서는 조용히 말했습니다. “오늘은 제가 직접 아들의 무덤에 꽃다발을 놓아 주려고 왔어요. 아무래도 제가 오래 살지 못할 것 같아서요” 관리인은 말없이 그 여인을 쳐다보다가 드디어 결심한 듯 말했습니다. “부인, 저는 무덤에 꽃을 놓아 달라는 부인의 편지를 받으며 늘 유감이었습니다.” “유감이라니요” “유감이지요. 이곳에서는 어느 누구도 그 꽃을 보거나 향내를 맡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병원 같은 곳에 있는 사람들은 정말 꽃을 좋아합니다. 그들은 꽃을 볼 수도 있고 향내를 맡을 수도 있습니다.” 몇 달이 지난 뒤 그 부인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당신 말이 맞았어요. 나는 직접 꽃다발을 병원에 있는 환자들에게 주었어요. 그렇게 하니까 사람들이 몹시 기뻐했어요. 그리고 저도 기뻤고요. 의사는 어떻게 해서 내가 이렇게 다시 건강해졌는지 그 이유를 몰라요. 하지만 저는 분명히 알고 있지요. 저는 지금 삶의 목표를 다시 찾았습니다.” 부인은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부인은 마음을 바꾼 것입니다. 죽은 아들을 사랑하던 마음을 살아 있는 가여운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말입니다. 그 일은 모든 사람에게 유익이 되었습니다. 병원에 있는 환자들에게 기쁨을 안겨주었습니다. 아마도 환자들의 병세가 호전되는 데도 적잖은 도움이 되었을 겁니다. 그리고 부인에게도 기쁨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부인의 건강이 아주 좋아졌다고 합니다.


  시모 나오미는 아무런 소망이 없었으나 룻이 시모가 있는 바로 그 곳에 머물렀을 때에 힘과 기쁨과 소망이 되었습니다. 우리를 필요로 하는 그 곳에 머물면 생명과 소망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강도 만난 자를 떠난 제사장이나 레위인이 아닌 바로 그 곳에서 돌보고 살리는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생명을 포기해야 생명을 구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이 죄인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계시고 사명이 있는 바로 그 곳에서 충성해야 합니다. 주님과 사명을 쉽게 떠나면 안 됩니다. 고통의 나오미가 있는 곳에 룻이 머물렀던 것처럼 부모와 하나님의 사명에 자리에 굳건하게 머무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3.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본문 16-17절 가운데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룻의 고백은 진실로 여호와만이 참 하나님이 되신다는 올바른 신앙에 근거해 있습니다. 룻이 모압으로 돌아가면 재혼하여 남은 여생동안은 편안한 삶을 누릴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기의 부모와 친척과 조건과 환경을 떠나 아무 희망이 없는 시모 나오미를 따라가겠다는 룻의 결심은 단순한 효심이나 존경을 초월하여 환전한 자기 희생을 감수한 위대한 여호와 신앙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나오미가 이방 우상의 나라에서도 그리고 남편과 두 아들이 연달아 죽는 기막힌 상황에서도 신앙의 태도와 믿음을 잃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여호와 신앙을 물려주고 며느리들을 신앙으로 교훈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신앙의 열매입니다. 신앙의 승리입니다. 전하고 가르치고 보여 주는 자가 없이 이방 여인 룻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감동과 본을 보여주는 부모와 어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룻은 나오미의 신앙을 따라서 자기나라 모압의 신을 완전히 떠나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확고한 신앙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충분히 비싸고 좋은 차를 탈 수 있을 만한 지위와 재력을 가진 이가 경차를 타고 다니며 검소하게 생활하고 낮은 자리에서 섬기는 사람을 사람들은 감동합니다. 우리에게 재물과 지위와 권세를 주신 하나님은 숨어 계십니다. 우리가 높아질수록 겸손해야 하나님이 드러납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한 사람이면서 동시에 하나님께 질책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는 삶에 새겨진 믿음의 흔적과 고비마다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의 흔적이 있었기에 죽을병 앞에서 눈물로 하나님께 기도했고 기적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그는 은혜받은 뒤 교만해집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믿음의 흔적이 있어야 하고 믿음의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히스기야처럼 내 공로로 은혜를 받았다고 착각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신앙이란 외줄타기를 하는 곡예와 같습니다. 매 순간 하나님 은혜를 구해야 하지만 나태해지거나 교만해지지 않도록 늘 경계해야 합니다. 감사와 탐욕은 같은 근원에서 출발합니다. 내게 복을 주신 하나님을 바라볼 때 감사하게 되지만 복 자체를 바라보면 탐욕스러워집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자기 공로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은혜를 고백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 은혜를 받고 그 은혜를 빼앗기지 않으려면 복 받을수록 겸손해져야 합니다. 


  고통 가운데서도 나오미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래서 룻이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라고 위대한 신앙 고백을 하였습니다. 우리 때문에 우리의 가족과 친구와 이웃이 이 고백을 하도록 살아야 합니다. 사람에게는 구원과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잘 보고 배우고 고백하는 룻이 되어야 합니다. 나오미가 있기에 룻이 있고 룻으로 인하여 나오미가 되었습니다. 부모 때문에 자녀가 하나님을 믿고 자녀 때문에 부모가 하나님을 믿고 성도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여러분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고백이 들려지기를 축원 드립니다.


  사랑하는 번동가족 여러분!

  룻은 효도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효도하여 보아스를 만나 결혼하고 다윗의 증조 할머니가 되 고 메시야의 조상이 되는 인생 대 역전승을 거두었고 최고의 인생이 되었습니다. 어버이 주일을 맞이하여 자녀들도 룻처럼 효도하고 부모와 어른들은 나오미처럼 믿음으로 살아 최고의 명문 가정이 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리는 행복한 가정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크롬(웹브라우저)에서 안보이실경우 :
설정 - 고급설정 - 시스템 - "가능한경우 하드웨어 가속사용" 체크 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