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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Worship broadcastof Bundong church

등록일 : 2019.04.12   조회수 : 2,937   설교본문 : (다니엘3:24-30)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음이니라

  미래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의 호기심을 이용한 사업이 성행합니다. 지금은 첨단 과학 기술 시대인데도 여전히 신문에는 ‘오늘의 운세’와 점집이 호황입니다. 그런 것들을 찾고 의지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입니다. 또한 미래 트렌드를 예측한다는 미래학자들의 책은 지나고 보면 별로 맞는 것이 없는데도 베스트셀러입니다. 미래에 대한 호기심을 이용한 마케팅이 적중한 때문입니다. 역사의 미래에 대해 두 가지 잘못된 견해가 있습니다. 첫째, 과학 기술 발전과 함께 미래가 점점 더 좋아져 유토피아를 향해 나아간다는 진화론적 낙관주의입니다. 둘째, 이 세상이 점점 나빠지니 피해야 한다는 현실도피주의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역사의 시작도 마지막도 하나님께 있다고 말합니다. 타락한 세상은 마지막 때에 관심이 없으나 성경은 마지막 때의 고통을 해산의 고통으로 설명하며(살전5:3) 이때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알려 줍니다. 해산의 고통은 끔찍하지만 반드시 겪어야 하며 끝까지 참을 때 새 생명이 탄생합니다. 말세의 고통도 피할 수 없지만 그 끝에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립니다. 우리는 ‘언제’가 아니라 주님이 ‘왜’ 오시는가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악을 제거하고 심판하고 만물을 구속하며 새 하늘과 새 땅을 주고자 주님은 다시 오십니다. 역사는 마지막 때를 향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때를 늘 의식하며 끝까지 참고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너무나도 유명합니다. 금 신상을 세워 놓고 모든 사람들에게 숭배를 강요하고 있는 느부갓네살 왕의 모습이 묘사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면 맹렬히 타는 풀무불(포항제철 용광로) 가운데에 던져 집니다. 이를 알고도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왕이 한 번 기회를 주었으나 이들은 분명하게 거절하였습니다. 그래서 느부갓네살 왕은 풀무불을 뜨겁게 하기를 평소보다 칠 배나 뜨겁게 하고 그들을 던졌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죽음입니다. 모두가 다 두려워합니다. 세 친구는 하나님과 믿음과 신앙을 위해 죽음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의 영웅들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않는 이들의 신앙이 우리 모두의 신앙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1. 몸을 바쳐 하나님만 섬깁시다

   본문 28절 “느부갓네살이 말하여 이르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그가 그의 천사를 보내사 자기를 의뢰하고 그들의 몸을 바쳐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그 하나님 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


  다니엘의 세 친구의 순교적 신앙에 대한 하나님의 적극적인 개입과 보호의 결과로 되어진 느부갓네살의 하나님 찬양이 28~30절까지 이어집니다. 교만한 세상 권력과 이방 우상에 대한 여호와 신앙의 궁극적인 승리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하나님께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와 순교를 각오한 신앙 용기를 가지고 여호와에 대한 신앙을 구체적으로 실천한 세 친구의 투철한 믿음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 세 친구는 몸을 바쳐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하나님 밖에는 다른 신을 잠시나 한 번도 섬기거나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하나님이 구원하셨습니다. 한 번이나 잠시가 계속이 되고 끝까지 하게 되고 지옥까지 가게 됩니다. 몸과 생명을 바쳐서 하나님만 섬겼습니다. 놀라운 신앙과 선포와 결단과 순교적인 태도입니다. 믿음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용광로 보다 더 뜨거운 신앙입니다. 


  경건한 할머니가 식사를 하면서 신앙에 관한 얘기를 잔뜩 늘어놓자 손녀가 말합니다. “할머니, 하나님 이야기는 이제 그만하세요. 하나님이 어디에나 계시다는 건 믿어요. 그러니까 평소에 사는 것처럼 그렇게 살아요, 네?” 할머니의 이야기가 잔소리 같다고 느껴져서 한 말이었겠지만 손녀가 한 말은 놓쳐서는 안 될 영적 진리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무릇 영적 삶이란 거창한 것도 세상을 떠나는 것도 아닌 평소처럼 사는 것입니다. 본회퍼는 신앙을 ‘세상 속의 초월’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신앙은 먹고 마시는 것과 동떨어진 채 말할 수 없습니다. 신앙은 일상 속에서 드러나야 합니다. 그래서 주의 만찬은 몸을 입은 영혼과 일상 속의 영성이 무엇인지를 극명하게 보여 줍니다. 끼니마다 대하는 식탁에서 또는 성찬 예배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음을 그리고 지금도 살아 계심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음식이 되어 주신 사실을 깨닫는 자만이 예수님처럼 다른 이들에게 음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분을 먹은 자가 생명을 얻고 다시 타인을 위한 생명의 떡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자기 몸을 생명의 양식으로 주신 것처럼, 양 떼를 먹인다는 것은 좋은 꼴을 많이 주는 것일 뿐 아니라 우리 자신이 꼴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 목자이신 예수님이 양 떼를 돌보시는 방법입니다. 몸을 바쳐서 하나님만 섬긴 다니엘의 세 친구처럼 몸을 바쳐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섬기고 사랑하고 충성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2. 하나님이 완전하게 지키십니다

  본문 27절 “총독과 지사와 행정관과 왕의 모사들이 모여 이 사람들을 본즉 불이 능히 그들의 몸을 해하지 못하였고 머리털도 그을리지 아니하였고 겉옷 빛도 변하지 아니하였고 불 탄 냄새도 없었더라” 


  평소보다 칠 배나 뜨거운 풀무불 속에 들어간 다니엘의 세 친구는 완전하게 보호되었습니다. 결박된 세 친구들이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다고 느부갓네살 왕이 고백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사자나 천사를 의미합니다. 왕과 총독과 지사와 행정관들이 불 가운데서 나온 세 친구들을 유심하게 살폈음을 봅니다. 이 상황에 고위 관리들과 함께 배석함으로서 하나님의 능력과 세 친구들이 수호한 신앙 양심의 정당성을 입증하게 되어 참소자들의 말문을 막게 하는 결과가 초래되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은밀한 것에 대한 절대적 계시자로 자신을 드러내 보이신 데 이어 바벨론인들이 가장 강력한 것으로 여기는 불의 주인으로 자신을 나타내심으로서 세 친구의 바벨론에서의 신앙생활의 장애를 제거해 주었습니다. 불 속에 있는 자녀를 건져주신 불보다 더 강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준 것입니다. 


  한 병사가 사막에서 생활하는 어느 수도사를 찾아가 하나님이 자신의 회개를 받아 주실 것에 대해 물었는데 수도사는 그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습니다. “친구여, 자네는 옷이 찢어졌을 때 그것을 버리는가?” 그 병사가 대답하기를 “아닙니다. 그것을 다시 수선해서 입습니다” 그러자 늙은 수도사가 그에게 반문했습니다. “자네가 옷에도 그렇게 신경을 쓰는데 하나님이 자신의 피조물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이지 않으시겠는가?”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 세상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목적이 회복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이 죄로 말미암아 심판에 이르게 되었기에 심판에 이르지 않도록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두셨습니다. 지폐가 오래 사용되어서 구겨지고 땅에 떨어져 흙과 먼지투성이가 되고 발로 밟히고 찢어진다고 해도 지폐의 액면 가치는 그대로 유지되는 것처럼 우리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실수라는 이유로 실패했다는 이유와 병들고 수술했다고 해도 나이 들어 늙고 힘이 약해졌다고 해도 사회에서 영향력이 흔들린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부르신 인생들입니다. 주님으로 구원 받은 인생들의 가치는 처음 부여하신 가치가 결코 사라지지 않게 하십니다. 회복이라는 말은 히브리어에 “하쉬브”라고 하는데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시고 잘못된 것으로부터 본래적인 것으로 돌이키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말합니다.


  오늘 여러분의 칠 배의 풀무불은 무엇인가요? 그것 때문에 얼마나 힘들고 뜨거운가요? 하나님이 그 가운데 계십니다. 반드시 견디게 하시고 승리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보호와 지켜 주심은 완전합니다. 세 친구들처럼 끝까지 신앙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과 완전한 구원을 체험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3. 하나님이 더욱 높이십니다

  본문 30절 “왕이 드디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바벨론 지방에서 더욱 높이니라” 


  높이니라의 히브리어 ‘첼라흐’는 돌진하다, 번영하다의 뜻입니다. 모든 방면에 있어서 세 친구들의 위상이 탁월하게 높아진 사실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느부갓네살의 오만하고도 위험한 명령을 기회로 이용하여 바벨론 왕궁에서 자신이 세계의 통치자이시며 섭리자이심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절망적인 환경은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케 하는 요인이면서 동시에 하나님 자신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 보이는 희망적인 사건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상 숭배를 가장 싫어하십니다. 모든 성도들은 신앙적인 동기에서 판단하고 결단해야 합니다.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만 섬겨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서신 속에서 164회나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을 사용하였습니다. 성도는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행동하고 살아야 합니다. 성도는 하나님 중심적인 신앙과 생활을 할 때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축복하십니다. 성도의 최종 삶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롬14:8, 고전10:31).


  영국의 스펄전은 십자가 앞에서 눈물이 사라진 자신을 발견하고 한탄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성경을 조용히 묵상하고 있었습니다. 십자가 장면이 나왔는데 제 마음속에 감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 저를 구원하신 주님의 이  십자가 사건 앞에서 왜 제 마음속 감격이 사라졌습니까?’ ” 이후 그는 한탄의 눈물이 십자가 사랑에 대한 감격의 눈물로 바뀌는 은혜를 경험했고 평생 십자가 중심의 설교를 했습니다. 그는 설교 중에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말하지 않으면 가슴이 답답해서 견딜 수 없다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모든 것이었고 목회의 전부였으며 설교의 핵심이었습니다. 그는 어느 자리에서도 십자가와 그리스도를 선포하지 않고는 이야기를 끝내는 경우가 없을 정도였습니다(갈6:14). 오늘도 하나님은 세 친구처럼 우상을 멀리하고 하나님만 섬기는 사람들을 보호하시고 구원하시고 반드시 높여 주십니다. 지금보다 더욱 높이십니다. 모든 면에서 형통케 하시고 승리하게 하십니다. 결국 하나님을 모르는 느부갓네살 왕도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만이 구원이시고 영원하십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평생 순종하며 하나님 앞에서 살고(Coram Deo) 납작 엎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여러분과 가정과 교회와 온 세상에 충만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사랑하는 번동가족 여러분!

  이 시대에 우리 모두는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됩시다. 몸을 바쳐 섬깁시다. 하나님이 완전하게 보호해 주시고 높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베푸시는 성찬 가운데 이런 불같은 은혜가 임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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