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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Worship broadcastof Bundong church

등록일 : 2018.11.09   조회수 : 2,875   설교본문 : 여호수아 4:1-9

너희 중에 표징이 되리라

  어느 선교사님이 회교 국가에 갔다가 교통사고 현장을 목격했습니다. 지나가던 자전거를 친 자동차 운전자가 사고를 당한 사람에게 다가가 “괜찮으세요?”라고 물었습니다. 피해자가 의식이 없어 대답을 못 하자 운전자는 “인샬라(알라의 뜻).” 하고는 떠나 버렸습니다. 사고가 나도 ‘인샬라’, 망해도 ‘인샬라’입니다. 알라의 일방적이고 절대적인 명령만 있고 사랑의 관계는 없습니다. 샤머니즘에는 간구만 있고 사랑의 관계는 없습니다. 사업을 시작할 때 돼지머리를 놓고 고사를 지내면서 아무도 “우리 사업이 잘되겠습니까?”라고 묻지 않습니다. 돼지머리가 뭔가 말할 것이라고 기대조차 하지 않습니다. 돼지머리로 형상화한 자기 우상을 섬기면서 ‘난 반드시 성공할 거야. 난 출세할 거야.’라고 끊임없이 주문을 외웁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예배는 다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교제이고 만남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말씀해 주소서.”하며 나아오는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자리가 바로 예배 현장입니다. 대표 기도가 길다고 비판만 하지 말고 설교가 길어진다고 계속 시계만 쳐다보지도 말아야 합니다. 예배 인도자가 찬양을 인도할 때 음악 감상하듯 듣고만 있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에게만 신경 쓰며 하나님 말씀을 듣고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면 샤머니즘의 제사와 다름이 없습니다. 우리는 예배를 드렸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이 받지 않으실 수 있습니다.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배는 하나님과의 사귐이요 만남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많은 역사적 유물과 기념물이 있습니다. 세워질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전설을 지니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 기념물을 보면서 그것에 담겨져 있는 교훈을 기억하고 되새깁니다. 역사적 기념물들은 그 존재 자체로 사람들을 가르치는 스승의 역할을 합니다. 오늘 본문에도 현재의 사건을 영영히 기념하고 후세 사람들을 교훈할 역사적 기념물을 만들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단 강을 건넌 후에 돌 열 둘을 요단 강 바닥에서 가져다가 요단 서편인 가나안 땅에 세우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그 돌로 표징이 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표징의 히브리어 ‘오트’는 기념과 증거라는 뜻입니다. 열 두 돌은 요단 강 도하가 오직 하나님의 권능에 의한 기적과 사건임을 후대에 증거로 보여주는 증표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도 그리하셨고 앞으로도 많은 표징을 보여 주실 것입니다. 분명하고 체험적인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을 잘 섬기며 충성하며 다음 세대 자손들에게 가르치고 전수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1. 광야의 하나님


본문 3절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요단 가운데 제사장들의 발이 굳게 선 그 곳에서 돌 열둘을 택하여 그것을 가져다가 오늘밤 너희가 유숙할 그 곳에 두게 하라 하시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 강에 들어서기 까지 40년 동안 광야 생활을 하였습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광야에서 40년 동안 하나님께서 매일 매일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 주셨습니다. 한번도 모자라거나 늦거나 부족하거나 굶긴 일이 없었습니다. 정확하고 풍성하였습니다. 더운 낮에는 구름 기둥과 추운 밤에는 불 기둥으로 정확하고 완전하게 인도하셨습니다. 바위에서 물이 나게 하시어 목마르지 않게 시원하게 하셨습니다. 옷이나 신발이 닳지 않도록 신비스러운 기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공급과 인도와 은혜인 것입니다. 인간의 노력과 공로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 거져 주시는 은혜였습니다.


  톨스토이 작품 <마귀와 빵 한 조각>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주인공 농부는 일하다 지치면 싸 온 빵 한 조각을 먹고 힘을 내어 다시 열심히 일합니다. 마귀들이 그를 타락시킬 전략을 짭니다. 어느 날 농부가 빵을 먹으려 보니 빵이 없습니다. 누가 훔쳐 간 것입니다. 그런데 농부는 자기보다 더 힘든 사람이 있는 모양이라며 자신은 한 끼 안 먹어도 되니 그가 먹고 회복되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이 일로 대장에게 혼이 난 마귀 졸병은 고민 끝에 좋은 방법을 찾습니다. 농부에게 수확의 풍성함을 준 것입니다. 가뭄 때든 홍수 때든 소출이 풍성하자 농부는 갑작스러운 풍요에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이때 마귀 졸병이 곡식으로 술을 만들라고 권하자 그는 술을 빚고 혼자 한 잔씩 마십니다. 이번엔 친구들을 불러 함께 마시라고 권합니다. 마침내 농부가 술에 취하자 그 안에 있던 더러운 죄악이 다 나옵니다. 마귀 대장이 졸병에게 어떻게 성공했느냐고 묻자 졸병은 ‘농부에게 필요한 것보다 조금 더 넉넉하게 주었을 뿐’이라고 답합니다. 잘될 때 조심해야 합니다. 시련과 어려움 속에서는 자신을 더 살피고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가며 겸손하고 진실해집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걱정과 근심이 없는 바로 그때에 세상에서 이 정도면 성공했다고 우쭐해지는 바로 그때가 가장 위험합니다. 인생의 승리에 대한 도취와 교만 속에는 바로 몰락의 DNA도 함께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크게 기억하고 감사하고 찬양하고 후손들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감사의 열두 돌을 세워서 지난 날 광야 인생에서 인도하시고 풍족하게 공급해 주신 광야의 하나님을 섬기고 찬양해야 합니다. 우리는 과거 하나님과 부모님과 사람들의 은혜를 쉽게 잊어 버립니다. 은혜를 잊으면 반드시 불평과 원망이 나오게 됩니다. 열두 돌을 세워서 평생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고 찬양하며 후손들에게 가르치는 표징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2. 요단 강의 하나님


본문 7절 “그들에게 이르기를 요단 물이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서 끊어졌나니 곧 언약궤가 요단을 건널 때에 요단 물이 끊어졌으므로 이 돌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영원히 기념이 되리라 하라 하니라”


  각 지파에서 한 사람씩 열 두 사람을 택하여 요단 강에서 열 두 돌을 취하여 기념비를 세우도록 하였습니다.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 강 가운데 굳게 선 결과 강물은 갈라졌고 강 바닥은 말랐습니다. 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사히 요단 강을 건널 수 있었습니다. 제사장들의 죽으면 죽으리라는 순교적 순종으로 기적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각 지파가 한 개씩 취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일치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역사는 흐르던 요단 물이 멈추었고 마른 땅이 되어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전하게 건너게 되었습니다. 광야에서 40년간 놀라운 기적을 베푸셨던 바로 그 하나님이 흐르는 요단 강의 물을 멈추게 하셨고 마른 땅을 만드셨습니다. 과거에도 은혜와 사랑을 베푸셨던 하나님은 지금도 여러 가지 기적으로 성도들을 사랑하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십니다. 요단 강에서 하나님이 역사하셨음을 기억하고 후손들에게 전해 주라고 열 두 돌을 요단 강 가운데와 가나안 땅에 세우게 하신 것입니다.


  수돗물이 귀하던 시절엔 우물이나 샘터에서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올려 썼습니다. 그러다 좀 더 발전해 펌프로 물을 길었습니다. 펌프에서 물을 퍼 올리는 원리가 아주 신기합니다. 펌프가 평소에는 바짝 말라있지만 그 안에 한 바가지 정도의 물을 붓고 딸깍딸깍 계속해서 펌프질을 하면 깊은 지하에서부터 물이 콸콸 솟아납니다. 그때 사용하는 한 바가지의 물을 ‘마중물’이라고 합니다. 아마도 많은 물을 마중하러 나서는 물이라고 해서 ‘마중물’이라고 한 것 같습니다. 지하수가 아무리 많이 있어도 이 마중물이 없으면 펌프로 물을 퍼 올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도 누군가 ‘마중물’ 같은 역할을 해야 합니다. 누군가 작은 걸음으로 마중을 나가면 하나님의 창대한 역사가 시작됩니다. 그런 사람은 한 해 농사의 종자와 같습니다. 농사꾼은 아무리 가난하고 먹을 것이 없어도 씨감자를 먹지 않습니다. 그만큼 종자가 중요합니다. 교회가 건축을 하거나 구제를 할 때에 어려운 형편에도 힘에 넘치는 헌신을 해서 종잣돈은 내놓는 사람이 있습니다. 과부의 두 렙돈 같은 헌금이 촉매제가 되어 교인들의 마음이 모이고 운동력이 생겨 하나님의 큰 사업이 이루어집니다. 이러한 부흥의 흐름을 만들어 내는 마중물이 되기를 소망하십시오. 내가 먼저 하나님을 찬송하고 예배하는 부흥의 불씨가 될 때에 하나님의 은혜가 성령의 바람과 함께 솟아날 것입니다.


  요단 강의 물이 흐르고 있는데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요단 강으로 들어가라고 하셨고 제사장들은 순종하였습니다. 순종할 때 기적은 일어나고 순종 만큼 기적은 일어납니다. 왜 기적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불순종 때문이며 순종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요단 강의 물을 멈추고 마른 땅이 되게 하신 하나님은 지금도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제사장들처럼 언약궤를 메고 요단 강으로 들어가면 됩니다. 죽기까지 순종하고 기도하면 됩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고 도와 주시고 끝까지 동행하십니다. 하나님 명령에 절대 순종한 제사장들처럼 순종하고 기도하는 마중물이 되어 여러분을 통하여 하나님의 표징이 나타나기를 축원 드립니다.


3. 가나안의 하나님


본문 8-9절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수아가 명령한 대로 행하되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신 대로 이스라엘 자손들의 지파의 수를 따라 요단 가운데에서 돌 열둘을 택하여 자기들이 유숙할 곳으로 가져다가 거기에 두었더라. 여호수아가 또 요단 가운데 곧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선 곳에 돌 열둘을 세웠더니 오늘까지 거기에 있더라”


  요단 강은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관문입니다. 광야를 지나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최대 장애입니다. 요단 강을 건넌 이스라엘을 향하여 요단 강에서 수집한 열두 개의 돌을 세우게 하심은 하나님이 가나안 전체를 주셨다는 언약의 표징입니다. 힘써 마련한 아름다운 집에 자신의 문패를 부착하는 의미입니다. 가나안 정복의 시작입니다.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신다는 하나님의 보증입니다. 확실한 하나님의 약속의 표징입니다. 따라서 기념비는 이스라엘 백성이 유숙한 길갈에 12개와 제사장들의 발이 섰던 요단 강 중앙에 12개로서 24개가 세워졌던 것입니다. 이중 표징 행위로서 사건의 확실성과 중대성을 시사한 요단 강 가운데 세워진 12돌은 비록 보이지는 않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 가운데 세워진 것과 같은 효과를 거두어 요단 강을 볼 때마다 그 사실을 생각나고 기억하게 하실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신다고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하나님이 주셨음을 뜻합니다. 언약과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가장 적절한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성취됩니다. 인간의 마음과 눈과 기억은 쉽사리 사라지기 때문에 24개의 돌을 세워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영원히 기억하고 섬기고 후손들에게 가르치라는 하나님의 보이는 교훈이십니다. 기념비는 보이는 말씀이고 보이는 하나님이십니다.


  2세기 초에 소아시아의 한 지방을 다스리는 플리니라는 로마의 총독이 있었습니다. 플리니는 뇌물 받기를 좋아하고 폭정을 일삼는 모습을 보다 못한 한 기독교인이 찾아와 플리니의 잘못을 조목조목 따지며 제대로 통치할 것을 권유했습니다. 기독교인의 직언을 들은 플리니는 큰 화를 내며 “감히 총독에게 이따위 말을 하는 너를 이 지역에서 추방시킬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상관이 없습니다. 모든 땅이 하나님의 것이니 저는 집을 잃지 않습니다.” “나는 당장 너를 죽일 수도 있다” “인간은 누구나 죽습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부활의 약속이 있습니다. 생명은 빼앗을 수 있어도 영생은 빼앗을 수 없습니다.” “도저히 못 참겠군, 그렇다면 너의 가족까지 모두 죽여 버리겠다.” “총독 각하, 저의 가정은 모두 저와 같은 믿음과 신앙을 갖고 있습니다. 각하가 방금 하신 협박들은 저희에겐 아무것도 아닌 일들입니다.” 크리스천의 담대함에 당황한 플리니는 결국 그를 돌려보냈습니다.

 

  몇 해 전 시내 식당에 갔는데 옆방의 손님들이 시끄럽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식당 직원에게 옆방에 조용히 해달라는 요청을 전해 달라 부탁했습니다. 그랬더니 직원이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라 원래 시끄럽고 우리가 얘기해도 듣지 않을 겁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순식간에 불편함은 부끄러움으로 변했습니다. 어쩌다 그리스도인이 시끄럽고 무례한 사람이 됐을까요. 우리끼리 기분 좋고 우리끼리 행복하고 우리끼리 아무 일이 없으면 된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습관이 교인들에게 당연한 것으로 배어든 것은 아닐까요. 교회 밖에서 그리스도인은 품격 있는 성품을 갖춰야 합니다. 덕스러운 성품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우리가 예수의 복음을 훼손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예의 바르고 친절하다는 좋은 소문이 생기면 좋겠습니다. 아직 예수를 모르는 사람들은 먼저 믿은 자의 행실과 성품을 중요하게 고려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베푸는 작은 친절이 복음의 문을 여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시끄럽고 불편한 이웃이 아니라 친절하고 예의 바른 그리스도인으로 빛을 발합시다. 오늘 만나는 이웃을 친절한 얼굴로 대하는 것은 복음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가나안에 들어선 우리 성도들은 가나안 백성답게 그리고 구원받은 성도답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표징이 되어야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야 합니다. 서로 섬기고 사랑하는 영적 가나안 백성으로 살아서 어디서나 그리고 누구에게나 하나님의 표징으로 살아가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사랑하는 번동가족 여러분
  인간은 변하고 짧지만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십니다(히 13:8). 광야와 요단 강과 가나안 땅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삶에 열 두 돌을 세워서 감사하고 찬양하고 다음 세대에게 복음을 전하는 살아 움직이는 하나님의 표징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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