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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Worship broadcastof Bundong church

등록일 : 2021.01.08   조회수 : 1,648   설교본문 : (창세기 50:22-26)

고센에서 가나안으로

  한 꼬맹이가 장난감을 잃어버리고는 찾지 못한 채로 찬송가를 교재 삼아 피아노 연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요? 밖에서 아이 엄마가 장난감을 찾았으니 나와서 가져가라고 불렀습니다. 아이가 대답했습니다. “못 가요. 지금 예수님을 찬양하고 있거든요.” 그러자 엄마가 대답했습니다. “순종하지 않으면 예수님께 찬송을 불러 드려도 아무 소용이 없단다.” 하나님은 입에 발린 말이 아니라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이들을 기뻐하십니다. 찬양 예배에 참석해 뜨거워지는 정서적인 경험을 하지만 삶에서 주님께 기꺼이 순종하지 않는다면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대신 그분을 이용하는 셈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율법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율법은 은혜로 구원해 주신 분을 어떻게 기쁘게 하고 사랑하며 닮아 갈지 가르쳐 줍니다. 기쁨이 넘치는 예배가 없는 윤리적인 행위나 온 삶을 드리는 순종이 빠진 채 감격에만 겨워 드리는 찬양은 참다운 기독교 신앙이 아닙니다. 살면서 자신의 생각과 의지와 감정을 온전히 주님께 드리는 바른길을 가야 합니다.
 
  한 사람이 생을 마감하면서 마지막 남기는 유언은 매우 중요합니다. 대개 마지막으로 남기는 말은 그 사람의 평생을 통해 가슴 속 깊이 담긴 말을 합니다. 죽으면서까지 거짓을 말하거나 저주하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대부분의 유언은 진실합니다. 사람은 질병과 죽음 앞에서는 천사가 됩니다. 우리는 유언을 통해 그 사람이 한 평생 어떻게 살아왔는지 또 무엇을 추구하고 살아왔는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경건한 요셉의 유언을 통하여 그의 신앙이 어떠한 것인지를 보여줍니다. 누구에게나 인생 마지막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매일 매일이 내 인생의 마지막이며 마지막 말이라는 생각으로 살아야 합니다. 요셉은 자기의 해골을 언젠가는 출애굽 할 때에 애굽 고센에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메고 올라가라고 간곡히 유언을 하였습니다. 매일 매일의 삶이 고센에서 가나안으로 향하는 거룩한 삶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1. 누구나 죽습니다
  본문 22-23절 “요셉이 그의 아버지의 가족과 함께 애굽에 거주하여 백십 세를 살며 에브라임의 자손 삼대를 보았으며 므낫세의 아들 마길의 아들들도 요셉의 슬하에서 양육되었더라”   


  요셉은 애굽에서 종신의 총리를 하며 영화를 누리며 110세에 죽었습니다. 죽기 전에 그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떠나 가나안에 돌아갈 것을 예언하고 그 때 자신의 해골을 가져가기를 부탁합니다. 110세는 애굽에서의 이상적 장수였다고 합니다. 요셉은 야곱이 147세를 살다가 죽은 후 54년을 산 셈입니다. 요셉의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아들들도 보았습니다. 슬하에서는 요셉의 무릎 위에서라는 뜻입니다. 손주를 보는 것은 하나님의 큰 은혜이며 축복입니다. 손자는 노인의 면류관이요 아비는 자식의 영화라고 하였습니다(잠언17:6).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유해(해골)나마 그리운 고향이나 삶과 밀접했던 곳에 묻혔으면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러한 인지상정에서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 가나안에 가야 한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으므로 요셉의 유언대로 그의 유해를 가나안으로 옮겨갈 수 있었습니다(출13:19).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430년을 지내면서도 결코 ‘가나안 언약’(창12:1-6,13:14-18)을 잊지 않았으며 자신들의 민족정신으로 승화하여 마침내 출애굽의 역사를 맞이했습니다. 애굽과 같은 이 세상에 동화되지 않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참고 인내하는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결정은 포기하기로 하는 것입니다. 절망은 가장 무서운 전염병입니다. 염려하고 걱정한다고 해서 되는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소망은 힘을 주고 단결시키며 가진 능력을 몇 배로 증가시킵니다. 소망은 단순히 지혜로운 생각이 아니라 신념이기 때문에 실상 믿음과 소망은 하나입니다. 영원한 하나님을 믿는 자는 내일에 대한 소망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 생애에 의미를 주는 근본적인 2대 요소가 바로 믿음과 소망입니다. 소망이란 앞으로 달려가는 것이지 뒤를 돌아보며 달려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심으로 미래에 대한 보증이 되셨다고 하는 성경말씀은 앞을 향하여 전진하는 소망의 보증이 되셨다는 말씀입니다. 좋은 강철을 만들려면 뜨거운 용광로의 공정을 거쳐야 합니다. 좋은 포도주가 되기 위하여 포도송이들은 여지없이 짓밟혀야 합니다. 좋은 강철이 된다는 희망을 가질 때 용광로는 두려운 대상이 아닙니다.


  인생과 죽음은 누구에게나 두려움이고 공포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고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라고 하였습니다. 누구도 한번 있는 죽음과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모두가 평생 잘 준비해야 합니다. 죽음과 심판을 평생 거룩하게 준비해야 합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성도의 성화입니다. 요셉이 110년을 살았던 것 같이 우리의 인생도 언젠가는 반드시 끝이 납니다. 그날을 잘 준비해야 합니다. 교만과 죄악을 버려야 합니다. 더욱 겸손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와 영생에 대한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겸손과 소망으로 다가오는 죽음을 믿음으로 준비하는 이 시대의 지혜로운 요셉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2. 하나님은 영원하십니다
  본문 24-25절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이르되 나는 죽을 것이나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 당신들을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요셉은 애굽의 번영과 축복이 아무리 좋아도 영원한 기업은 가나안이라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단순히 해골이 아니라 미이라로 만든 그의 유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 때에 요셉의 유해를 메고 가겠다는 맹세를 시켰습니다. 이 맹세는 성취되었고 가나안에 정착한 후 그의 유해는 그의 아들 에브라임의 땅인 세겜에 안장되었습니다(출13:19,수24:32). 요셉은 자신은 비록 죽어도 하나님은 여전히 살아계셔서 마치 자신이 그리하였던 것처럼 일일이 형제들을 찾아보시며 보살펴 주실 것임을 확신한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만나 주시고 심방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였고 믿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영원하심과 사랑하심을 굳게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선민을 대표하여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3대 족장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이때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하여 긍휼을 호소했으며(출32:13) 또한 하나님은 이들과 맺은 언약 때문에 그 백성들을 책임 있고 끝까지 보호하셨습니다(레26:42).


  어느 날, 한 제자가 스승에게 불평했습니다. “스승님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스승님은 한 사람만을 편애하시는 듯합니다.” 스승은 대답했습니다. “그렇게 느꼈다니 다행이로구나.” 스승은 모든 제자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각자에게 비둘기를 한 마리씩 주면서 말했습니다. “모두 이 비둘기를 가지고 내가 볼 수 없는 먼 곳에 가서 죽이고 땅에 묻고 오도록 하여라.” 한참 후에 모든 제자가 빈손으로 왔습니다. 그런데 유독 한 제자만은 비둘기를 죽이지 않고 가지고 왔습니다. 제자들을 모은 후 스승은 그 제자에게 이유를 물었습니다. “너는 왜 비둘기를 죽이지 않고 그냥 가지고 왔느냐?” 그 제자가 대답했습니다. “예, 스승님이 볼 수 없는 곳으로 가서 죽이라고 하셨으나 아무리 찾아봐도 그런 곳은 없었습니다. 스승님의 모습과 스승님의 모든 가르침은 항상 그림자처럼 저와 함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독(愼獨)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보거나 듣는 사람이 없는 곳에 혼자 있는 때에도 도리에 어긋나는 행동이나 생각을 않는 마음과 태도를 가리킵니다. 미국 시카고에 윌로우크릭교회를 담임하는 빌 하이벨스 목사는 그의 저서 「아무도 보는 이 없는 때 당신은 누구인가?」에서 인격을 ‘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 우리가 하는 행동’으로 정의합니다. 아무도 보는 이가 없어도 하나님은 보고 계십니다. 그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코람데오, 즉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 살려고 애써야 합니다. 면전신앙으로 사는 사람은 사람들의 눈이 없다고 함부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프랑스가 낳은 위대한 영성가 성 버나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문을 열고 들어 오신다든지 걸어오시는 것은 못 봤어도 예수님은 항상 내 곁에 계셨습니다.” 감리교를 창설한 요한 웨슬리는 항상 빈 의자를 곁에 놔두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늘 말했습니다. “이 의자는 예수님의 자리입니다.” 미국의 로버트 슐러 목사도 회의할 때마다 가운데 자리를 비어두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회의를 주재하시도록 한다는 의미에서 아무도 보는 이 없어도 일상생활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살아가는 게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사탄은 숨김이라는 덫을 놓습니다. 사람들은 그것도 모른 채 은밀하게 숨기려 합니다. 그러나 알고 계십니까? 영원한 비밀은 없다는 사실을. 더구나 영적인 세계에서는 더욱더 그렇습니다. 아주 사소하고 미세한 것도 숨길 수 없습니다. 아예 숨기려는 유혹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사탄은 편리하게 가면을 쓰라고 유혹합니다. 이중적으로 말하고 행동하면 사람들이 모를 테니까. 그런데 사람의 눈은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의 불꽃같은 눈은 속일 수 없지 않습니까? 언젠가 우리의 민낯과 부끄러운 실체는 다 드러나고 말 것입니다. 그러기에 아무도 없는 거기에서도 늘 하나님의 임재의식 속에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아니 계신 곳이 없으신 무소부재하시며 언제나 계시고 영원하시며 임마누엘 하시는 분이십니다. 인간의 삶은 빠르고 짧으나(시90:12) 하나님은 영원하심을 믿으며 요셉처럼 고센에서 가나안으로 향하는 삶을 사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3. 후손들이 잘 되어야 합니다
  본문 25-26절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요셉이 백십 세에 죽으매 그들이 그의 몸에 향 재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


  미이라를 넣는 관은 보통 애굽 무화과나무로 만든다고 합니다. 요셉의 유해는 그 후 최소한 330년 이상을 기다렸다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간 때 같이 나갔던 것입니다. 창세기의 결말은 이스라엘 집안의 모든 문제는 해결되고 요셉의 다복하고 평화로운 말년의 기사로 끝납니다. 그러나 창세기는 파란만장한 출애굽 기사에 이어지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그 평화로운 종말은 폭풍우 전야의 고요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이고 역사입니다. 고요도 지나가고 폭풍도 다 지나갑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영원하신 것입니다. 요셉은 야곱처럼(창49:29-33) 자신이 죽자마자 유해를 가나안 땅에 안장하라고 지시 하지는 않았지만 훗날 출애굽시 자신의 유골을 가나안 땅으로 이장토록 당부한 것은 그의 깊은 신앙심을 잘 보여 줍니다(히11:22). 요셉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훗날 그의 후손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돌아가 그곳을 기업으로 차지하게 될 것임을 조금도 의심치 않는 것입니다(15:13-21). 요셉의 장례 행사는 야곱의 장례에 관한 기록과는 달리 매우 간단히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훌륭한 업적을 남긴 애굽의 총리였으므로 성대한 장례 예식이 있었을 것입니다. 요셉의 일생 중 어느 부분을 잘라도 향기가 나는 아름답고 완벽에 가까운 생을 살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마음에 언제나 약속의 땅이 있었고 하나님으로 가득 찬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오늘 하늘은 맑지만 내일은 구름이 보일는지 모릅니다. 어제는 이미 당신의 것이 아니니 지금 하십시오. 친절한 말 한 마디가 생각나거든 지금 말하십시오. 내일은 당신의 것이 안 될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언제나 곁에 있지는 않습니다. 사랑의 말이 있다면 지금 하십시오. 미소를 짓고 싶거든 지금 웃어주십시오. 당신의 친구가 떠나기 전에 장미가 피고 가슴이 설레 일 때 지금 당신의 미소를 주십시오. 불러야 할 노래가 있다면 지금 부르십시오. 당신의 해가 저물면 노래 부르기엔 너무나 늦습니다. 당신의 노래를 지금 부르십시오. 영국의 유명한 설교가 찰스 스펄전 목사님의 글입니다. 이것이 바로 솔로몬이 오늘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삶의 바른 자세입니다. 적극적인 삶을 살아가시고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매일매일 하나님의 은총 속에 즐겁게 살아가시는 귀한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요셉의 고난으로 인하여 요셉의 가족과 후손들이 잘 되었고 민족과 국가를 살렸던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과 가족과 후손과 민족과 국가를 망하게 하는 파괴적인 삶과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나로 인하여 가족과 후손과 교회가 잘 되게 하는 요셉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런 고센에서 가나안으로 향하는 모두를 잘 되게 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사랑하는 번동가족 여러분!
  누구나 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하십니다. 우리의 삶과 신앙으로 인하여 후손들이 잘 되어야 합니다. 이 땅에서 매일 매일 고센에서 가나안으로 향하는 요셉적인 삶을 사는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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