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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Worship broadcastof Bundong church

등록일 : 2020.10.16   조회수 : 829   설교본문 : (마가복음1:35-39)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독일에 에릭 케스트너라는 작가가 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친구와 함께 장거리 기차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피곤에 지쳤는지 친구는 의자에 기대자마자 곤히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한참 자던 친구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외쳤습니다. “이런, 깜빡했네! 하마터면 수면제 먹는 것을 잊을 뻔했구먼!” 친구는 황급히 수면제를 입에 털어 넣었습니다. 그러고는 다시 자기 시작했습니다. 이렇듯 인간은 습관의 존재입니다. 한 사람의 습관이나 생활방식은 그 사람이 반복한 수많은 행동의 결과입니다. 어떤 행동을 반복하다 보면 습관이 형성됩니다. 습관은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일상에서 반복되는 것이고 그것은 곧 성품이 됩니다. 그런데 이 반복된 행동이 무섭습니다. 태국에서는 야생 코끼리를 잡아 길들일 때 다리 한쪽에 쇠사슬을 매어 기둥에 묶어 둡니다. 처음에는 코끼리가 몸부림치면서 기둥을 뽑아내려고 애씁니다. 그러다가 어느 때쯤에는 부질없는 일임을 알게 됩니다. 그럴수록 오히려 다리만 아플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조련사는 코끼리가 쇠사슬을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완전히 학습할 때까지 기다립니다. 그런 후에 사슬을 풀어놓습니다. 그런데 신기합니다. 코끼리가 우리 밖으로 나갈 생각은 하지 않고 안에서만 맴돌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아직까지 자신의 다리가 쇠사슬에 묶여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괜스레 고생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코끼리는 평소에 익숙한 습관에 자신의 운명을 맡긴 것입니다. 사람은 익숙한 것을 좋아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거기에 길들여집니다. 그래서 익숙하지 않은 게 다가오면 불안해하고 불편해집니다. 그래서 익숙한 삶을 고수하려고 애씁니다. 어떤 것에 길들여진 나를 들여다보십시오. 운전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깜짝 놀랄 때가 있습니다. 전혀 의도하지 않은 곳으로 차가 가고 있습니다. 왜입니까? 습관 때문에 늘 가던 곳으로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핸들이 꺾여 있습니다. 좋은 쪽으로 길들여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문제가 생깁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33년을 사셨습니다. 30년은 나사렛에서 사생애를 사시면서 공생애를 준비하셨습니다. 30년을 준비해서 3년 동안 메시야로서 공생애를 마치셨습니다. 예수님께 하루하루는 너무나도 소중했습니다. 예수님의 일상이 중요했습니다. 하루하루를 하나님 뜻대로 사셨습니다. 하루하루가 모여서 3년의 공생애를 이루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하루를 어떻게 사셨는지 생각하면서 우리들도 매일 매일 예수님처럼 사는 은혜와 결단이 있기를 축원 드립니다.
 
1. 기도하시는 예수님입니다
  본문 35-36절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시몬과 및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가”   


  예수님의 하루는 밝기 전인 새벽에 시작하셨습니다. 하루를 효율적으로 사용하셨습니다. 오늘날의 새벽 3-4시경이었을 것입니다. 일어나사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사역 중 매우 중대한 일을 눈앞에 두셨습니다. 지금 예수님은 갈릴리 전역에 선교 여행을 떠나기 전으로서 그 어떤 준비보다 하나님 아버지와의 내밀한 교제를 통한 영적 준비가 필요했기 때문에 이 한적한 곳에 이른 시간에 홀로 나와 기도하셨습니다. 기도하시더니의 헬라어 ‘프로슈케토’는 미완료 시제로서 예수님께서 기도의 끈을 늦추지 않고 지속적이고도 열심히 기도하셨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구속 사역과 갈릴리 사역을 성공적으로 마치시기 위해 하나님께 힘과 능력을 요구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기도의 모본(模本)을 통하여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세례 받으실 때(눅3:21), 열 두 제자를 택하실 때(눅6:12),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실 때(막6:41), 제자들에게 중요한 질문을 하실 때(눅9:18), 변화 산에 계실 때(눅9:28),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요11:41), 성만찬 예식을 제정 하실 때(요17장), 겟세마네 동산에서(막14:32), 십자가 위에 계실 때(눅23:34), 부활 후에(눅24:30) 기도하셨습니다. 위의 기도의 경우들은 예수님의 기도 생활이 얼마나 진지했으며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보여주셨습니다. 기도는 예수님이 지니신 능력의 원천이며 영적 양식이었습니다. 기도하시기를 쉬지 않으셨습니다(삼상12:23).


  세상사람 모두가 부족하고 모자란다고 다투고 싸웁니다. 구원의 본질은 부족함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는 만원만 쥐어줘도 충분하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재벌은 천억 원이라도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자기중심적 삶의 패러다임 안에 있으면 만족이 없습니다. 나를 극대화하려 하고 부족한 부분을 다른 사람의 것으로 채우려 드는 것이 인간의 한계며 죄 된 본성입니다. 이 죄에서 풀려나 하나님과 동행하며 사는 것이 구원입니다. 전구는 자기가 수고해서 빛을 내지 않습니다. 그냥 전선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가 전선을 통해 전구에까지 이르러 빛을 냅니다. 누군가 스위치만 켜면 전구는 빛납니다. 전구는 전기가 부족할까봐 염려하지 않습니다. 전선에 접속해 있는 한 전구는 부족감으로부터 자유롭습니다. 마찬가지로 크리스천은 하나님께 접속해 있기에 부족감을 느끼지 않는 존재입니다. 이 어린아이 같은 믿음 없이는 누구도 하나님을 경험할 수도 없고 누릴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과 하나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품에 안겨 그분과 한길을 걸으며 그분의 임재를 믿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참된 복을 누리며 초월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교회는 그런 구원을 경험하고 전하는 구원받은 사람들의 복된 공동체입니다.


  모든 시작과 힘의 근원은 기도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사역의 근원은 기도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기도보다 앞서지 않으셨습니다. 기도한 그대로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의 삶 자체가 기도이셨습니다. 예수님의 삶을 보면 어떻게 기도하셨는가를 볼 수 있습니다. 기도로 인하여 어떤 삶과 사역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기도는 모든 시험과 사탄의 세력을 완전히 제압합니다. 예수님이 새벽 미명에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셨던 것처럼 우리들도 예수님처럼 기도해야 합니다. 일찍 기도합시다. 한적한 곳에서 기도합시다. 기도의 시간을 반드시 갖고 늘립시다. 기도의 능력을 믿읍시다(마21:22). 기도가 습관이 되고 삶이 되게 합시다. 기도하면 성공합니다. 예수님이 기도하시기 위하여 오신 것처럼 평생 예수님처럼 깊이 기도하는 교회와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2. 전도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본문 37-38절 “만나서 이르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사람들은 아직 온전한 메시야관을 확립하지 못한 채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인기에 열광하는 그릇된 메시야관에 집착하였습니다. 모든 것이 이기적이고 탐욕적이고 세상적인 동기에서 예수님을 이용하려고 찾아다녔던 것입니다. 이제부터 예수님은 갈릴리 지방의 각 동네와 마을들로 다니시며 본격적인 선교 사역을 수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처럼 단순한 기적이나 일으켜 군중들에게 인기나 얻고 세상적인 부귀영화나 누리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으셨습니다(마4:6-10).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는 머리 둘 곳조차 없으셨으나(마8:20) 고난의 길을 택하시고 그 고난을 통하여 영원한 천국 복음을 전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요세푸스(Joesphus)에 의하면 당시 갈릴리 상류지역에는 수천 명을 군락(群落)으로 하는 200여개의 마을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200개의 마을과 모든 사람들의 모두는 구원의 증거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여 모두 구원 받게 하는 것입니다.


  중국 알리바바 그룹의 창업자인 마윈 회장은 명문대를 나오지도 않았고 IT분야를 전공하지도 않았습니다. 가난한 집안에서 자란 평범한 영어 강사였습니다. 그런 그가 창업 15년 만에 중국을 넘어 세계를 집어삼켰습니다. 그가 스탠퍼드 대학에서 강의할 때 아주 재미있는 말을 했습니다. 자신의 성공 비결은 ‘돈, 기술, 계획’ 이 세 가지의 부재였다는 것입니다. 돈이 없었기에 돈으로 해결할 문제를 치열하게 고민하며 아이디어와 노력으로 응전해야 했고 기술이 없었기에 능력 있는 기술자를 존중하고 우대했다는 것입니다. 또 계획이 없었기에 변화하는 시장에 발 빠르게 대처하는 유연성을 갖출 수 있었다고 합니다. 가진 것이 없다고 길이 막힌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빈털터리 난민에 불과했던 이스라엘 백성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길을 가게 됩니다.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더 겸손하게 기도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를 수 있고 다른 사람을 소중히 여기며 함께 팀워크를 이루어 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겸손히 한 걸음씩 나아가면 눈앞의 상황이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은 반드시 아름다운 미래를 열어주실 것입니다.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는 하나님의 길, 그 완전하고 복된 길을 걷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쓰시면 우리들도 마윈 회장처럼 될 수 있습니다. 모세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할 수 있습니다. 사람을 키우고 변화시키는 것이 가장 큰 사역이고 업적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늘에서 땅으로 오셨고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다니셨습니다. 전도는 가까운 곳에서 먼 곳으로 가는 것입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당 끝까지 전도하는 것입니다(행1:8). 전도는 마을에 사람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들이 있는 현장과 삶의 자리로 나아가서 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말씀과 명령에 절대 순종하는 사람들을 사용하십니다. 불순종하는 사람들은 결코 어디에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누군가의 전도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의 발이 아름다운 것입니다(롬10:15). 전파하는 자가 있어야 복음을 듣게 됩니다. 이 시대에 우리의 입을 열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복음의 벙어리가 되면 안 됩니다. 담대하게 전해야 합니다. 어려운 시대이지만 교회와 모든 성도들은 예수님처럼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세워짐을 알고 전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3. 귀신을 내쫓으신 예수님이십니다
  본문 39절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그들의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쫓으시더라“


  예수님의 전도 여행이 온 갈릴리에 충만했습니다.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귀신들을 내쫓으셨습니다. 이스라엘에는 480개의 회당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나 행동 하나하나는 당시 종교 지도자들과는 달리 힘이 있고 권위가 있어 사람들에게 놀라운 감화와 생명력을 발하였습니다. 예수님의 권위가 특출하게 보인 사실은 훗날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의 권세의 출처 문제를 놓고 논쟁을 일으킨 점에서도 잘 드러납니다(마21:23-32). 이처럼 예수님의 권위가 특출하며 또한 당신의 교훈이나 행동이 위대한 감화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먼저 권위의 기원 내지는 출처를 보면 예수님의 권위는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비롯된 것이며 스스로 하나님의 신적 권위를 가지고 계시므로 독창적이고 적극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전통이나 인술에다 그 권위의 기반을 두었던 당시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과는 달리 예수님은 스스로의 신적 권위에 근거하여 말씀하셨습니다(마5:44). 또한 예수님의 인격의 진실성 및 언행일치를 들 수 있습니다.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입으로는 온갖 미사여구를 늘어놓으나 실제 행동은 본받을 바가 못 되었으며 일반 백성들에게 율법의 과중한 짐을 지워놓고는 스스로는 손가락하나 움직이기도 싫어했습니다(마23:4). 반면에 예수님은 먼저 실천하신 바를 교훈으로 베푸셨으며 가르치신 내용을 몸소 모범으로 보이셨습니다. 이와 같이 진실한 인격에서 나오는 말씀은 큰 감동이 있었고 사탄과 귀신들을 내쫓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신앙은 형식이 아닙니다. 신앙은 만남입니다. 신앙은 형식이 앞서면 안 되고 내용이 앞서야 합니다. 물론 신앙에서는 형식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지금 예배를 드리는데도 분명한 형식이 있습니다. 신앙고백, 찬송, 헌금, 말씀…… 우리가 형식을 무시하면 안 됩니다. 그러나 그 마음속에 진정으로 주님을 만나지 못하고 주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지 못하면 그 예배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형식이 중요하지만 내용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리를 의존하는 것보다 예수님께 더욱 의존해야 합니다. 전통을 추구하는 것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기 위해서 애를 써야 합니다. 어떤 전통적인 틀을 가지고 따지며 이야기하는 것보다 그리스도를 닮고 그리스도를 닮기 위해서 추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조직적 체계에 얽매이지 말아야합니다. 조직이 사람과 교회 그리고 그리스도를 위해서 있어야지 교회가 조직을 위해서 있으면 안 됩니다. 공동체가 조직화되고 조직에 매달리면 매달릴수록 화석화되는 것입니다. 현대판 바리새인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제도주의를 극복하여야 합니다. 제도와 조직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한 그 교회는 화석과 같은 곳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는 여러 기관으로 조직되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근본적으로 생명을 가진 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에는 어떤 고정된 교리나 체계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되는 법칙이 있어서도 안 됩니다. 잘못된 것이라고 판단될 경우에는 언제든지 고치고 새로운 진리를 수용해야 합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최고의 목적은 그리스도이지 조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오만과 편견이 여기에 있습니다. 자기들의 전통만이 맞다는 것입니다. 자기들처럼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조직을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해도 용납도 없습니다. 자기들의 신앙이 옳고 가장 바르고 제일이기 때문에 자기들과 같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비판의 대상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들이야말로 편견중의 편견이며 잘못된 것 중에 잘못된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능력이 부족하면 이런 현상이 나타납니다. 신앙을 방해합니다. 능력이 상실됩니다. 이런 귀신들을 내쫓아야 합니다. 예수님만이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능력이 없으면 귀신이 지배합니다. 이제 예수님의 말씀과 능력으로 귀신을 내쫓아야 합니다. 교회와 가정과 성도들의 마음이 말씀과 예수님으로 충만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사랑하는 번동가족 여러분!
  우리 모두는 예수님처럼 살아야 합니다. 매일매일 예수님을 배우고 닮아야 합니다. 오직 믿음의 주이신 예수님만 깊이 생각하고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하면 놀라운 능력과 기적과 열매를 체험하게 됩니다. 기도하신 예수님처럼 기도합시다. 전도하신 예수님처럼 전도합시다. 귀신을 내쫓으신 예수님처럼 귀신을 내쫓읍시다. 우리 모두 예수님 닮은 작은 예수로 살아가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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