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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Worship broadcastof Bundong church

등록일 : 2020.07.31   조회수 : 1,604   설교본문 : (마태복음 6:5-8)

기도할 때에

  직장 생활을 처음 하는 젊은이들은 ‘관행’이라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그 말 자체에 부정적인 뉘앙스가 있지만 관행 가운데는 부단한 시행착오 후 효율적인 방법으로 검증되어 채택된 것들이 없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대로 받아 행하면 유익할 때도 있습니다. 반면 비리나 부정을 눈 감아 주는 악한 편법이 관행으로 정착된 경우도 있습니다. 크리스천은 잘못된 관행에 대하여 남들은 다 그렇게 하더라도 나는 따를 수 없다는 유난을 떨 필요가 있습니다. 그 근거는 물론 하나님 뜻이어야 합니다. 세상일과 하나님 뜻에 현격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뇌물이나 불법적인 향응 같은 관행은 하나님 뜻 이전에 일반적 도덕 가치에 비추어도 잘못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지적하면 직장 동료나 상사들이 “지금까지 잘해 왔고 다들 그렇게 하는데 왜 유난이냐?”라고 반응하기 일쑤입니다. 이렇게 나온다면 혼자 튀는 것이 싫고 귀찮기에 그저 대세를 따르겠습니까? 아니면 그저 시도라도 한번 해 본 것을 위안 삼으며 회사를 떠나겠습니까? 잘못된 관행과 죄악에 맞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납득할 만한 합리적인 대안과 더불어 그들을 감화시킬 만한 인격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찾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충분히 이 같은 역량을 갖추게 하실 것입니다.


  기도를 안 하는 관행이나 잘못된 기도의 관행이 있으면 분명히 그리고 빨리 바로 잡아야합니다. 평생 잘못된 관행의 신앙이나 기도 생활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쉽지는 않지만 반드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할 수 있도록 능력을 주십니다. 오늘 말씀에 “기도할 때에”라는 말씀이 본문 6장 5절과 6절과 7절에 반복해서 나옵니다. 성도는 분명히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자신의 문제를 직접 아뢰는 것으로서 인간으로서는 가장 숭고하고 아름다운 일입니다. 사람이 기도할 때에 가장 거룩하고 인간답게 보입니다.  ‘기도할 때에’의 헬라어는 ‘호탄’인데 가정법 현재시상과 더불어 사용됨으로써 규칙적인 기도가 요구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유대인들은 하루에 3번씩(삼시,육시,구시) 규칙적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좋은 습관인데 습관화 되어서 좋은 것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내용은 다 사라지고 석고와 같은 형식만 남게 되었습니다. 형식과 내용은 모두 필요하고 상부상조합니다. 우리 모두 더욱 기도하고 기도다운 기도를 하나님께 규칙적으로 기도하는 우리 교회와 성도들이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1. 외식하지 말라
  본문 5절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유대인들은 기도를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서 외식 적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순수하고 수줍고 떨리는 상태에서 하나님께만 기도하였으나 습관화되어 습관적이고 자동적으로 사람에게 보이는 기도를 하였습니다. 기도 쇼(show)를 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였습니다. 유대인의 정규적인 기도의 장소와 모습입니다. 유대인들은 회당에서 기도하였고 대략 포로기를 전후하여 시작된 형식으로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하였습니다(단6:10,행10:9). 그리고 이 기도하는 시간에 외출 중이면 길가에서 기도하였고 있는 곳에서 하나님께 기도를 하였습니다. 나중에는 기도 시간이 되면 일부러 외출하여 사람들이 많이 모인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서 기도하기를 좋아하였습니다. 그 순간 하나님과 기도는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사람과 외식만 남게 되었습니다. 외식 자는 무대에 서서 연극하는 배우입니다. 배우들은 관중들을 많이 얻기 위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을 찾아다닙니다. 이런 외식적인 기도는 하나님 상대는 아니며 기도의 상이나 응답도 받을 수 없습니다. 서서 기도하는 것은 유대인의 보통 기도의 태도였고 앉아서도 하고 꿇어하는 간곡한 기도와 엎드려하는 자복의 기도가 있습니다.


  ‘리플리 증후군’이란 허구의 세계를 설정하고 그것이 진실이라고 믿는 증상을 말합니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재능 있는 리플리씨」의 주인공 이름에서 유래했습니다. 호텔 종업원 리플리는 재벌 집 아들을 살해한 뒤 자신이 그의 행세를 합니다. 하지만 자신이 남을 흉내 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자신을 재벌 아들이라 믿는 겁니다. 크리스천 중에도 이런 리플리 증후군을 앓는 사람이 매우 많습니다. 헛된 안일함에 빠져 자신이 괜찮지 않은데도 괜찮다고 스스로 안위합니다. 영적 리플리 증후군의 극단적인 예가 바로 이단에 빠진 사람들일 것입니다. 자기 의에 빠진 그들은 바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자기 세계로 끌어들이는 것을 사명으로 여깁니다. 나는 구원 받았으니 지옥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다고 자만하는 사람들도 리플리 증후군을 앓는 사람들입니다. 위대한 사도 바울조차 선줄로 여길 때마다 넘어질까 두려워하며 스스로 경종을 울리며 살았습니다. 성경에도 리플리 증후군의 희생자가 자주 등장합니다. 이들은 속이는 자의 으뜸인 사탄의 먹잇감입니다. 사탄은 할 수만 있으며 하나님이 택하신 자도 현혹하려 합니다. 심지어 예수님도 시험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말해야 무엇 하겠습니까? 누구든지 사탄의 유혹과 함정에 빠질 수 있음을 명심하며 선줄로 착각하지 말고 항상 주의해야 합니다.


  외식하는 자의 세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악하면서도 선을 가장하는 유형과 자기 만족에  도취하여 자기도 모르게 자신을 속이면서 또 타인을 속이는 유형과 외식을 하면서도 하나님과 사람을 위해 스스로 가장 훌륭한 일을 하고 있다고 믿는 유형입니다. 이런 ‘리플리 증후군’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기도는 남에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과 자신과의 순결한 만남의 장(場)입니다. 기도는 보이고 얻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교제가 진정한 목적입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기도의 장소와 자세를 문제 삼아 책망하신 것이 아니라 기도의 동기와 목적이 불순하였기에 교육하신 것입니다. 장소와 자세와 사람을 초월해서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께만 보이고 호소하는 간절한 눈물과 애통의 기도를 드림으로 하나님의 칭찬과 응답과 상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2. 골방에서 기도하라
  본문 6절 “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엘리사나(왕하4:33) 다니엘은(단6:10)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였습니다. 엘리사의 지시를 받은 과부 모자가 골방에서 문을 닫고 기름을 부은 말씀이 교훈적입니다(왕하4:1-7). 기도는 사람 상대가 아닌 오직 하나님을 상대하는 것입니다. 골방기도는 문자적으로 골방에서 기도하라는 물리적이고 장소적인 의미도 있습니다. 그러나 골방은 기도에 적당한 장소이나 알려지면 길가나 회당이나 같습니다. 반대로 길가도 하나님께만 기도하면 영적 골방이 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가 설립된 때에는 120명이 합심 기도한 다락방 즉 골방 기도가 있었습니다(행1:13-14). 골방 기도는 개인의 영을 기르는 곳이고 다락방 기도는 교회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어디서 기도하든지 하나님께만 기도하는 골방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기도하는 나와 하나님 사이에 무엇도 끼어서는 안됩니다. 무슨 소리나 욕심이나 정욕이 들어가면 그곳이 회당이나 큰 거리 어귀가 되고 외식적인 기도로 전락하게 됩니다. 사람에게로 떨어지는 기도가 아닌 하나님께로 온전히 올라가는 향기로운 골방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6.25 직후 나병 환자 수용소에 미국 로터리 클럽에서 회원들이 방문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거기에 미국에서 파견 나온 간호사 선교사 한 사람이 나병 환자의 고름이 흐르고 있는 상처를 간호하고 있는 뜨거운 인간애의 장면을 포착하였습니다. 한 사업가가 그 장면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사진을 찍으면서 이러한 말을 했습니다. “이것은 백만불짜리 가치가 있는 사진이다. 그러나 나는 누가 나에게 백만불을 주어도 이 일을 못할 것이다.” 간호사 자매는 이 사업가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저도 그 일을 못합니다.” 이 대답을 듣고 사업가가 당황하면서 말하기를 “그렇다면 당신은 어떻게 그 일을 할 수 있소?”라고 물었더니 자매가 대답하기를 “그리스도의 사랑이 저를 강권하기 때문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십자가에서 나를 향해 보여 주신 조건 없는 그 놀라운 사랑! 내가 그를 신뢰했을 때 나에게 놀라운 죄 사함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나를 의롭다 하시고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시고 나에게 영생을 허락하시고 지금도 내 삶의 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이 사랑을 체험한 사람들만이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사랑의 방식을 따르십시오.


  골방의 헬라어 ‘타메이온’은 자른다는 뜻입니다. 세상 모든 것과 단절하고 오직 하나님과만 은밀하고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문을 닫고 기도하는 것은 오직 자신과 하나님 이외에는 어떠한 제3자의 개입을 불허한다는 뜻인 동시에 순결한 영혼의 교제만이 있을 뿐임을 뜻합니다. 우리는 바라보는 것도 많고 귀에 들리는 것도 많고 오만가지 생각도 많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 앞에서 아무런 숨김없이 간구하는 자에게 그 기도의 자리에 함께 하셔서 모든 기도를 들으시고 모든 것을 갚아 주십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신 성품을 온전히 반영한 약속입니다. 사랑하면 다 참고 할 수 있듯이 하나님을 사랑하면 골방에서 기쁘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골방적인 기도를 드리는 골방기도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3. 중언부언하지 말라
  본문 7-8절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기도의 장소의 문제는 유대인의 외식자와 비교하였으나 기도의 말에 대해서는 이방인과 비교하였습니다. 산상보훈을 주신 갈릴리지방은 이방과 접경이었으므로 이방의 풍속에 익숙 했을 것입니다. ‘중언부언’의 헬라어 ‘발타로게세테’는 말더듬이라는 뜻입니다. 무의미한 말을 반복하는 것을 뜻합니다. “바알이여 응답하소서(왕상18:22), 크다 아데미여(행19:34), 나무아미타불(불교)”처럼 백만번씩이나 반복할 것을 권장하는 뜻입니다. 유대교에서 일정한 기도의 시간이 차기까지 기도문을 반복하는 것이나 시계를 보면서 끊임없이 중얼거리는 것이 중언부언입니다. 이 교훈은 많은 기도와 긴 기도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 없이 사람에게 들려주고 긴 시간을 기도했다는 과시욕으로 말을 많이 하는 것을 금하신 것입니다. 내용있고 집중적이고 간절한 긴 기도나 긴 시간의 기도는 바람직한 기도의 모습입니다. 예수님도 같은 기도를 세 번이나 반복하셨고(마26:44) 바울도 그랬으며(고후12:8) 재판관과 과부의 비유(눅18:1-8)에는 오히려 반복하는 기도가 장려되어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 중심에 진정한 열망이 없이 말하고 보여주기 위한 말만을 반복하는 형식적 기도를 경계하신 것입니다. 많은 말은 할 것이 아니나 많은 기도는 해야 하며 유창한 말이 아니라 계속적인 경건한 마음의 열정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기도의 수를 헤아리지 않으시고 그 무게를 달으시고 기도의 길이를 재지 않으시고 그 깊이를 재시는 분이십니다.


  한 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끝까지 완주하는 것입니다. 나를 불러 주신 하나님께 순종해 마지막 순간까지 달려가는 것입니다. 비록 여전히 부족하고 연약하고 넘어지고 실수하지만 나는 이 믿음의 경주를 온전히 달려 내기 원합니다. 내가 완벽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니라 나를 부르신 그분이 신실하기 때문에 감히 꿈꿀 수 있는 아름다움 도전입니다. 세상의 무자비한 요동과 세월의 무차별한 변화 속에서도 내가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을 꼭 붙잡을 수만 있다면 말입니다. 세상이 가치 있다고 추켜세우는 여러 능력이 있습니다. 어떤 이는 IQ(지능지수)가 어떤 이는 EQ(감정지수)가 또 어떤 이는 LQ(사랑지수)가 중요하다고하며 이것들이 인생에서 싸워 돌파하는 능력이라고 단접합니다. 물론 이와 같은 것들은 세상을 사는 데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갈망하고 소유할 것은 하나님이 부르신 길을 끝까지 달려가는 완주 능력입니다. 인생의 단면만 보는 스냅숏 같은 이해가 아닌 인생을 전체적으로 개관할 수 있는 파노라마 같은 인생관을 소유해야 합니다. “주님 말씀하시면 내가 나아가리라 주님 뜻이 아니면 내가 멈춰 서리라” 여러분은 그날까지 완주할 자신이 있으십니까? 그리고 맡겨주신 사명에 온전히 순종할 준비가 되어있으십니까?


  우리의 신앙과 봉사와 사랑과 충성과 기도가 하나님 만날 때까지 계속 되어야 합니다. 사람이나 물질이나 환경 대문에 포기하거나 중단 되어서는 안됩니다. 다 참고 넘어야 합니다. 외식하며 기도하고 중언부언 기도하는 것도 대단합니다. 그러나 이왕이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기도의 한 단계를 올려야 합니다. 노력하면 반드시 되고 열매를 맺게 됩니다. 우리 모두는 기도의 장소와 태도와 언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와 친밀성입니다. 우리의 기도와 예배와 봉사에 하나님이 빠져있습니다. 하나님 없는 모든 것은 불행이고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것입니다. 다시 하나님을 모시고 기도하고 섬기는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사랑하는 번동가족 여러분!
  더욱 기도 합시다. 계속 그리고 끝까지 기도 합시다. 외식하지 말고 중언부언하지 말고 골방에서 중심으로 하나님께만 기도하는 교회와 모든 성도가 되어 놀라운 응답과 축복이 열려지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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